제26호 2014년 7월호 [특집] 특집-여름휴가

[ 제4핵발전소 건설 중단 운동 ]

타이완 탈핵, 시민들의 손에 달렸다

글 허영섭



타이베이 북부 해안가 공랴오 지역의 제4핵발전소 가동을 막기 위해 타이완 시민단체들이 뭉쳤다. 타이완 정부는 제4핵발전소 건설 및 가동을 보류한다고 발표했으나, 올해 11월에 열리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심을 살피기 위한 ‘작전상 후퇴’라는 전망도 있다. 결국 제4핵발전소의 운명은 내년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국민투표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타이완의 시민단체들이 뭉쳤다. 완공이 임박한 타이베이 북부 해안가 공랴오 지역의 제4핵발전소 가동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다. 지난 3월 마잉지우 총통의 국민당 정부가 추진 중인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에 반발하여 대학생들이 입법원(국회) 기습점거 시위를 벌인 데 이어 다시 대규모 핵발전소 반대 시위대가 타이베이 중심가를 휩쓸고 지나갔다.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시위대가 승리


이번의 핵발전소 반대 시위는 린이슝 전 민진당 대표가 촉발시켰다. 원로 정치인으로 반핵운동가이기도 한 그가 정부에 대해 제4핵발전소 건설 중단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 것을 계기로 시민과 대학생들이 다시 거리로 몰려나온 것이다. 머리와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행렬이었다.
시위대는 총통부 앞의 케타갈란 거리를 비롯한 타이베이 시내의 도로 곳곳에서 점거농성을 이어나갔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어머니도 있었다. 다음 세대에게만큼은 핵의 공포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다짐일 것이다. 경찰이 살수차를 동원해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물리적인 충돌이 빚어졌다.
하지만 결국 시위대가 승리했다. 제4핵발전소의 건설 및 가동을 보류키로 한다는 정부의 ‘항복 선언’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이미 완공된 제1원자로의 경우 안전검사가 끝나는 대로 봉쇄하는 동시에, 제2원자로 건설은 전면 중단한다는 것이 타이완 정부의 발표 사항이다.
그러나 아직 잠정적인 승리에 불과할 뿐이다. 올해 11월에 열리는 전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당 정부가 여론의 동향을 무시할 수 없어 ‘작전상 후퇴’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결국은 국민투표로 제4핵발전소의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타이완의 여야 정당이 국민투표 방식을 놓고, 서로 유리한 조건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 그런 때문이다.
현재 타이완에는 제4핵발전소 말고도 제 1~3핵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타이베이 북부 지역의 진샨과 궈셩 남부 지역인 마안샨 등 3곳에 각각 2기씩 모두 6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다. 앞으로 제4핵발전소가 추가로 가동되면 원자로는 8기로 늘어난다.
타이완에서 반핵운동이 두드러진 것은 지난 2011년 3월 일본의 도후쿠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안전 문제가 제기되면서부터다.
타이완이 환태평양의 활화산 지진대에 놓여 있을 뿐 아니라 제4핵발전소가 수도인타이베이에 근접해 있으므로 후쿠시마에서와 같은 사고가 일어난다면 타이완 전체가 극심한 혼란에 처할 수밖에 없다. 제1,2핵발전소도 인근에 있다.
핵발전소 폐기물 처리 문제도 타이완 국민들을 걱정스럽게 만들고 있다. 기존의 핵발전소에서 배출된 폐기물이 남쪽 란위다오 섬에 임시 저장되고 있으나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타이완은 과거 핵발전소 폐기물 처리를 놓고 북한과 협상을 벌였으며, 최근에도 중국과 러시아 등과 접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마라톤 대회, 원주민 집단 반발 등 다양한 반핵 시위


현재 타이완에서 반핵 활동에 참여하는 단체들은 모두 130여 개에 이른다. 이 단체들에 정식 가입한 회원들은 22만 명 정도지만 실제로 반핵 활동을 하는 사람은 훨씬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환경단체를 비롯하여 교수협회, 어머니 모임, 노동조합, 농민단체 등 분야별로 다양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원주민 단체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임시 폐기물 처리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란위다오가 원래 원주민들이 거주하던 섬이었다. 육지의 원주민들도 집단적으로 반발 움직임에 가세하고 있다.
핵발전소 반대 시위의 하나로 최근 타이베이 중심가의 5km 구간에서 벌어진 이색 마라톤 대회도 기억할 만하다. 제4핵발전소 인접 지역에 적지 않은 인구가 밀집해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려는 의도였다. 반핵단체들이 개최한 이 대회에는 1970년대 올림픽 마라톤 종목의 메달리스트인 치청을 비롯해 영화감독 커이청 등이 얼굴을 내비쳤다. 휠체어를 탄 채 가족들의 손을
잡고 참석한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타이완의 핵발전소 문제가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 이들의 고민이다. 논란을 빚고 있는 제 4핵발전소만 해도 리덩후이 총통 시절부터 계획하고 추진해 20년도 넘게 복잡한논의 과정을 거쳐 왔으며, 이미 막대한 건설비가 투입되었으므로 지금에 와서 무조건 중단하기 어렵다. 지금껏 들어간 건설비도 3천300억 타이완달러(약 11조3천억원)에 이른다.
그동안 야당인 민진당 진영에서 제4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한 것이 사실이지만 과거 천수이볜 총통 집권 시에도 한동안 계획이 유보된 끝에 예산이 다시 배정되어 건설작업이 재개됐다는 사실에서도 그러한 고민이 읽혀진다. 민진당의 입장이 지금처럼 바뀐 것은 2008년 국민당에 정권을 넘겨주고서다.
앞으로 제4핵발전소의 가동이 차질을 빚는다면 전력 수급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점도 감안돼야 한다. 새 핵발전소가 2016년부터 정식 가동에 들어가면 설계 수명이임박한 진샨 제1핵발전소는 2018부터 폐쇄될 계획이었다. 궈셩 제2핵발전소도 2022년에는 수명이 끝난다. 따라서 제4핵발전소 계획이 중단될 경우 제한 송전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타이완 사회의 당면한 문제점이다. 현재 타이완의 전력 수급에서 원자력 의존률은 18.4%에 이른다.
타이완 정부도 궁극적으로는 핵발전소를 폐쇄한다고 방침을 밝히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원칙적인 입장이다. 신재생에너지개발로 국제적인 수준의 탄소배출 저감 목표를 이룬다는 전제 아래서다. 다시 말해서, 앞으로 당분간은 핵발전소 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결국 마지막 남아 있는 것은 국민투표를 통과하는 방법뿐이다. 현재 절차와 방법은 논의 중에 있으므로 빠르면 내년에는 국민투표가 실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타이완 국민들이 국민투표에서 어떤 결과를 도출할 지 주목된다.


↘ 허영섭 님은 《대만, 어디에 있는가》 저자로, 일간지 기자로 일하다가 현재 타이완에 관한 칼럼을 여러 매체에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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