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호 2014년 7월호 [특집] 특집-여름휴가

[ 꼭 한번 따라 하고 싶은 4인4색 휴가기 ① 나 홀로 떠나는 자전거 여행 ]

이런 병원이라면 “올해도 입원하겠습니다”

글 김성희 편집위원


평소에 하지 못하던 호사스런 소비하기, 일에 매여 사느라 가보지 못하던 명승지 가기 등 휴가 때 무엇을 왜 하고 싶은지는 각기 다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많고 바가지 상혼에 도로는 차량으로 꽉 막혀, 재충전하기보다는 오히려 피로가 누적되어 녹초가 되는 휴가.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진짜 휴가가 아님은 모두가 같은 생각 아닐까?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심신의 만족을 얻는 틈’으로서 휴가를 살며시 들여다봤다.



자전거를 타고 하루 80km씩 달려


지난해 5월 중순에 안식휴가를 썼다. 일본에 자전거를 가지고 가서 이십여 일 동안 시코쿠 섬을 일주했다. 1200년 전통을 가진 이 순례에 해마다 수십만 명이 찾아와 ‘입원’한다고 한다.
“올해도 시코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일본 시코쿠 섬 순례자들을 위해 세워놓은 무료숙소인 젠콘야도에 놓여있던 방명록에 이 말이 쓰여 있었다. 물론 병원은 은유적인 표현이다. 현실의 스트레스를 치유하기 위해 순례에 나섰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시코쿠는 일본 불교에서 부처님처럼 숭앙되는 코보대사가 태어나고 자라난 섬이다. 그가 당나라에 유학하고 온 뒤 수많은 이적을 행하며 수행했다는 유적지에 세워진 88개 절이 섬 전체에 흩어져 있다.
나는 무게가 13kg 되는 자전거에 여섯 개의 가방을 매달아 텐트와 매트리스 같은 야영장비와 옷가지, 먹을거리 등을 싣고 가능하면 야영장을 찾아 캠핑하며 순례를 했다. 걸어서 다니는 사람들은 하루에 30~40km씩 걸으며 40~50일쯤 순례를 한다. 물론 틈틈이 구간마다 끊어서 걷는 이들도 있고 자동차를 타고 절을 도는 이들도 있다. 나는 줄곧 자전거로 다녔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자전거에 부착한 속도계를 보니 22일 동안 1천800km를 달렸다고 찍혀 있었다. 보통 하루에 80km씩 달리면서 섬의 구석구석을 누빈 것이다.




보통 하루에 80km, 22일 동안 1천800km를 달렸다. 관악산 꼭대기 높이에 있는 절까지 자전거로 올라야 하기도 했다. 자전거는 어떤 때는 날개였고, 때로는 족쇄가 되었다.


무엇을 위해 이 짐을 밀고 가나?


자전거는 어떤 때는 날개였고, 때로는 족쇄가 되었다. 걸어 다녔다면 빨라야 한 시간에 4~5km 이상 이동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전거는 열심히 달리면 평균 시속 30km로, 하루에 120km 이상도 가게 해주었다. 그런데 절들은 대개 산 위에 있었다.
12번 절 쇼산지나 20번 절 카쿠린지 같은 곳은 관악산 꼭대기 정도의 높이에 있기 때문에, 양동이로 퍼붓는 것처럼 땀을 쏟아야 하는 날도 많았다. 힘닿는 데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르다가, 결국 내려서 끌다가, 그마저 안 되면 길 위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걸어 올라야 하는 일도 많았다. 그럴 때 자전거는 중력을 가중시키는 멍에에 지나지 않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서 “살아가는 데에는 철로 변에 있는 공구박스 정도만 있으면 되는데, 사람들은 욕망에 사로잡혀 맹목적으로 집을 넓히고 그 안에 월부로 가구를 채워 넣은 뒤 그 빚을 갚느라 평생을 허덕인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는 편리와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부담에 대해 효용과 비용을 따지다보면 문득, ‘무엇을 위해서 지금 이런 짐을 밀고 가고 있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서울에서의 삶에 회의가 싹트는 순간 품곤 하던 질문의 핵심도 바로 이것이었다.


비관도 낙관도 대수롭지 않네


나의 ‘안식’휴가는 체력의 소모나 마음의 부담으로 따지면 일상의 그것보다 훨씬 더 고되었다. 다만, 산을 넘고 해안 길을 달리는 일,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고심하는 일, 절마다 들러 향을 사르고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일... 일상은 지극히 단순해졌다. 온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도 많았다. 며칠 쉴 새 없이 달리다보니 이곳이 한국인지 일본인지도 구분되지 않았다. 사는 일이 복잡한 것 같아도 결국 이렇구나 싶었다.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달리면서 무엇을 먹을지, 어디에 몸을 뉘일지 모색하는 점에서 말이다.
먹고 달리는 일만 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사람 몸도 자동차나 기계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기지고 피로가 쌓이면 우울해지면서 ‘이런 일을 해서 뭐 하나?’ 하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배불리 먹고 잠시 쉬면 금세 기분이 달라졌다. 그토록 비관적이던 일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곤 했다.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은근히 스스로 명징한 의식이나 합리와 이성, 사유로 삶을 밀고 가고 있다고 믿어왔는데 착각이었다. 섭취한 음식물이 당분으로 분해돼 세포에 보내진 에너지가 몸도 마음도 여기까지 몰고 온 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자존심이 상할 게 아니라 안도할 만한 일이었다. 세상에 대한 비관과 낙관이 모호한 관념이 아니라 명쾌한 ‘물질의 합법칙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야영이 자연, 그리고 나 자신과 더 깊이 만나는 일이라 여겨 주로 캠핑장에서 먹고 자며 순례를 했다. 땀을 쏟으며 힘들었다가도, 배불리 먹고 쉬면 금세 살만해졌다.


나그네를 환대하는 그 섬에 가고 싶다


그 섬에 다녀온 지 어느새 일 년이 지났다. 섬에서의 기억도 이미 희미해졌다. 순례를 마치고 마지막 절을 빠져나올 때는 제법 한 소식 깨닫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이내 번민과 회의감에 휩싸였다. 배불리 먹으면 살만해지고 허기지면 불행해지는 삶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섬의 독특한 분위기는 쉬 잊히지 않는다. 나그네에게 베풀면서 쉼 없이 거룩해지던 사람들. 마주치는 순례자들에게 ‘오세타이’라며 간식이든 돈이든 심지어는 잠자리까지 베풀려고 하는 것이 그 섬의 독특한 문화라고 했다. 순례자들을 코보대사의 현신으로 여긴다고 했다. 하루 묵었던 바닷가 마을의 홋토민박 주인아저씨는 날이 밝아 또다시 길을 나서는 내 물통에 얼음물을 채워주면서 “저 풀과 나무와 우리들, 세상 모든 것이 코보대사”라고 했다. “밥 한 그릇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는 말을 습관처럼 읊고 다니던 한살림 일꾼의 귀에는 쏙쏙 들어와 박히는 말이었다.
그 길에서 도쿄와 오사카에서부터 멀리 캐나다나 독일, 스페인에서 온 숱한 순례자들을 만났다. 대개는 삶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돌아보기 위해 걷고 있던 이들이었다. 내가 시코쿠 순례를 떠올리고 떠난 것도 같은 이유였다. 팍팍한 삶을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 오면 또다시 그 섬을 떠올릴 것이다. 실례지만 자신의 접대를 받아달라고 겸손하게 부탁하던 그 섬의 사람들. 승과 속, 사원과 시장이 따로 없고 나그네와 주민이 어울려 빚어내던 풍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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