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호 2014년 6월호 살림,살림

[ 책으로 떠나는 인문학 여행 새로운 경제를 위한 두 가지 시선 ]

대안경제는 정말 대안인가?

글 하승우

아주 도발적인 책이 있다. 협동조합이든 뭐든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대안이 못된다는 주장에 맞서 근본적인 대안을 찾겠다는 발상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J K 깁슨-그레엄(두 여성학자가 함께 토론하고 공동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이름을 같이 썼다)의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2013)가 그것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유기체적 사회 개념, 영웅적인 역사의 서사, 진화론적 사회발전의 시나리오, 본질주의적 남근중심적 이원적 사고 패턴의 복합적 산물”이라고 비판한다.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J K 깁슨-그레엄 지음 | 엄은희, 이현재 옮김 | 알트 펴냄 | 2013년

 

백만 개의 조용한 혁명
베네딕트 마니에 지음 | 이소영 옮김 | 책세상 펴냄 | 2014년

 

‘자본주의 대 비자본주의’는 거짓이다!

단순한 치기로 이런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깁슨-그레엄은 중층결정을 주장하는 포스트모던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적 여성주의를 받아들여 현실을 분석한다. 우월한 남성과 이를 보조하는 여성이라는 고정된 위계질서를 벗어나 다양한 남성‘들’과 여성‘들’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 여성들을 “긍정적이고 특수한 존재로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현실의 다양한 활동들 중 어느 한 활동이 우위를 점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모든 것을주관하고 결정한다고 볼 수는 없다.

 

강력한 자본주의가 존재한다고 전제하는 순간 반/비자본주의적인 실천들은 자본주의를 보완하는 활동 정도로 여겨진다. 우리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다양한 거래유형과 다양한 노동양식, 여러 가지 형태의 기업들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가치를 생산하고 분배하고 있다. 이런 반(半)자본주의, 비(非)자본주의적인 실천들은 자본주의에 무기력하지 않고 자본주의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실을 움직인다.

 

예를 들어 깁슨-그레엄은 인도 ‘자영업여성연합(SEWA)’의 활동이 개인의 생활과 노동을 보장할 뿐 아니라 “비자본주의적 생산을 증진시키고, 보다 중요하게는 자본주의적 고용과 착취에 대한 긍정적이고 가능한 대안들로서 비자본주의적 계급과정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이런 활동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바는 이런 활동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더 나아가 비자본주의, 비남성주의 활동에 주목하면 경제를 더 발전시키지 않아도 분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그동안 자본주의가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던 여성, 환경, 원주민 등의 비계급 영역에서 새로운 언어를 개발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깁슨-그레엄이 완벽하고 일관된 전략이 이미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자연화된 지배를 무장해제하고 탈구시키며, 새로운 경제적 생성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내자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과거 속에 이미 대안이 있다

관점은 다르지만 베네딕트 마니에의 《백만 개의 조용한 혁명》(2014)은 잊혔던 대안들에 주목한다.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의 지혜가 대안을 조직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다. 노인들의 기억에 따라 자연의 물길을 살리는 인도의 조하드 수로망은 영양실조를 해결할 뿐 아니라 먼 곳으로 물을 길러 다녀야 했던 여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서 여자아이들도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했다. 수로를 통해 농업이 살아나자 농업노동자들은 도시로 떠나지 않고 고향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조용한 혁명은 단지 주민들의 생활을 개선시킨 것으로 그치지 않고, 주민들의 삶을 민주적으로 변화시켰다. 인도의 수로망은 “파벌이니, 카스트, 마을들 사이의 다툼 등 으레 벌어지기 마련인 분쟁을 극복하면서 사회적 장벽을 뛰어넘는 집단 관리체제를 정립하는데 성공했다.”

 

이런 수많은 혁명들은 “현지의 오랜 지혜를 이용”했다. “서구적 관점에서 진행된 개발과 식민지화로 남반구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아갈 땅에 대한 관리권을 박탈당했”지만 혁명은 주민의 관리권을 회복시켰고 오랜 상호부조의 전통을 부활시켰다. 예를 들어,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은 특유의 “‘파차마마(어머니 대지)’에 대한 존중”을 강조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시민들의 연대에 힘입어 노동자회생기업을 만들었다. 이런 노동자회생기업의 95% 이상이 협동조합으로 재건되었다. 심지어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미국에서도 라틴아메리카 출신 이민자들은 “청소와 베이비시팅, 식사배달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협동조합을 창설하면서 고용주와 피고용인 사이의 역학 관계를 전복시켰”고, 서점 폐업을 원치 않는 주민들의 협동으로 동네서점이 유지되었고, 게릴라 텃밭과 뒤뜰 나누기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심지어 “아프리카 전역에서는 농업·유통·저축 같은 분야에서 협동조합운동이 다시부흥하는 추세다. 케냐에서 협동조합은 국내총생산의 45퍼센트까지 담당하고, 25만 5000명을 고용하고, 국내 저축액의 31퍼센트를 차지하고, 커피 시장의 70퍼센트와 면 시장의 9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결국 수많은 혁명들이 사람들의 존엄을 회복시키고 주민들을 조직화시키며 생태계를 보존하고 생활의 자율성을 확보하도록 만들고 있다. 혁명에 동참한 주민들은 더이상 정치인이나 개발업자에게 자신들의 삶을 맡기지 않는다.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될까?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대안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 희망의 징조이다. 그러나 대안운동이 있다는 것과 대안의 삶을 사는 것 사이에는 ‘아직까지’ 깊은 골이 있다. 운동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변화의 승리를 자신할 수 없다. 특히 국가와 재벌이 결탁해서 일상을 재난으로 만드는 한국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아무런 선택지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선택만으론 삶을 지속할 수 없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관한 더 많은 질문들이 필요하다. 물어야 답을 구할 수 있다.

 

↘ 하승우 님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으로 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 자치와 공생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의 모순과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날카롭고 까칠해야 하지만 삶의 방향은 우정을 향해야 한다고 믿는 ‘까칠한 로맨티스트’입니다. 오랜 수도권 생활을 접고 충북 옥천으로 가 자치와 자급의 삶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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