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호 2017년 3월호 [특집] 환절기

[ 들어가는 글 ]

환절기

글 이선미 편집부

 

 

3월은 흔히 환절기라고 불린다. ‘철이 바뀌는 시기’라는 뜻의 환절기. 작게는 계절이 바뀌고, 크게는 기존의 질서가 새로운 질서로 바뀌는 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환절기가 ‘변화하는 과정’을 상징한다고 봤을 때, 2017년 3월 현재 우리의 일상과 시대 전반은 환절기를 지나고 있는 게 아닐까. 현실 정치, 사회, 농업, 일상생활 등 네 가지 부문에서 우리가 맞닥뜨린 변화와 그에 따른 영향 그리고 그 시기를 잘 보내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이토록 불안정한 시기라니
환절기를 ‘계절이 바뀌는 때’라고 보자. 한국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으니 환절기도 그에 맞춰 네 번 있는 셈이다. 그런데 환절기라고 하면 대부분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때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변화의 폭이 가장 크기 때문 아닐까.
기온이 크게 높아지면서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고 겨울잠 자던 동물이 깨어난다. 모든 잎과 열매를 떨구고 추위를 견디어 내던 나무는 새순을 맺기 시작한다. 멈춰 있던 것이 움직이고, 무에서 유가 생겨나는 급격한 변화이다. 추위에 길들여져 있던 사람의 몸도 혼란을 겪는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환절기’를 입력하면 ‘환절기 피관리’ ‘환절기 비염’ ‘환절기 면역’ ‘환절기 감기’ 등 건강 관련 단어들이 연관 검색어로 주르륵 뜬다.
변화는 불안정을 동반한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양창순, 2012)에 따르면 봄이 되면 환절기마음병을 앓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한다. 대개는 주변 정리가 잘 안 되고 마음이 혼란스럽다는 증상을 호소하는데, 한자리에 가만히 있기가 어렵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단다. 단지 마음만 그럴까. 지난해 한국 현실 정치에서는 기존 정치의 부패와 무능에 분개하여 촛불을 든 시민들에 힘입어 대통령 탄핵 소추라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거대 정당은 순식간에 분열되어 서로를 탓했고, 시민들은 탄핵에 찬성하고 새로운 정치 사회 시스템을 외치는 ‘촛불집회’ 쪽과 탄핵에 반대하고 기존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태극기집회’ 쪽으로 나뉘어 거리로 나섰다. 그야말로 정국 혼란이다. 이와 함께 자고 일어나면 새롭게 밝혀지는 대통령의 비위 사실과 각종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묵묵히 살기가 어렵다고 호소하는 사람들. 이 역시 환절기마음병인 듯하다.

 

이상했던 것이 더는 이상하지 않을 것
봄이 되면 겨우내 벗지 않던 오리털 점퍼를 거들떠보지 않고 엄두도 못 내던 얇은 옷을 꺼내 입듯이, 환절기를 통과하면서 전에는 예사롭던 일이 더는 일반적이지 않고 이상했던 일은 평범해진다. 지난해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한 여성이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예전처럼 ‘묻지 마 살인’이 발생했다고 잠깐 화제가 되었다가 금세 잊힐 수도 있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많은 사람이 이 사건에 담긴 여성 혐오를 읽어 내고, 우리 사회의 소수자 배제와 혐오에 반기를 들었다.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로 자리 잡았고, 정치 지도자들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해도 이 얼마나 놀라운 ‘비정상의 정상화’란 말인가.
어리석고 수고로운 일로만 여겨지던 친환경 자립 농사가 농업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농업으로 주목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따라 옛날부터 전해져 온 농사 절기와 실제 농사일 시기가 맞지 않는 현실, 초국적 종자 기업에 씨앗 주권을 빼앗기고 산업화된 농업에 잠식당하는 상황에서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고 자급에 초점을 맞춰 소규모로 짓는 농사가 더는 ‘괴짜 농부의 전유물’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불안정하고 괴상한 환절기가 우리 삶을 관통하고 있다. 익숙했던 모든 것과 이별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계절을 살아가려면 우선은 건강해야겠다. 해야 할 일이 쌓여 있어 마음이 급하더라도 충분히 쉬며 외부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면서 환절기의 변화를 차근차근 받아들이는 것이다. 변화는 때때로 고민과 고통을 수반한다. 그래서 아프고 괴로울 때도 있지만, 이 시기를 잘 통과하고 나면 우리의 체질도 바뀌고 튼튼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문학은 환절기에 태어난다”고 한 소설가 박정애의 말처럼, 혼란이 질서가 되는 이 극적인 특징 덕분에 환절기는 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어 왔다.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새로운 결말에 이르는 과정은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하고 막연하지만 기분 좋은 설렘을 느끼게도 한다. 딱히 까닭은 없지만, 뭔가를 기대하게 하는 바람 같은 시간. “(…)/팔 한짝을 잃어버린 옷소매처럼 마음/허공으로 풀풀 날려다녔지만/비루함과 무기력의 껍질을 벗고/귀뚜라미처럼 더듬이를 허공에 올린 채/이 터질 것 같은 순간에 대해 타전하고 싶었다/우리가 어찌하지 못하는 시간 말고/천천히 바뀌며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는/또하나의 거대한 시간 쪽을 향해.”(도종환 시 <환절기>,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창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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