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호 2017년 4월호 살림,살림

[ 땅땅거리며 살다-강원 원주생산자공동체 흥업우리맛식품 서정희 씨 ]

“기본을 지키며 살고 싶어요”

글 구현지 편집장 _ 사진 류관희

 

 

“우리 공동체 밭에서 기른 콩을 쓰고 모자라면 원주 콩을 더하지요.
콩을 무쇠솥에 삶아서 메주를 만들고, 그 메주로 만든 막장을 전통 항아리에서 숙성시키고. 재료나 담그는 방법이나 다 전통 방식으로 기본을 지켜서 만들어요. 그다음은 자연이 주는 햇볕과 온도에 달렸어요.”

 

 

강원도는 추워서 콩 맛이 더 달아
강원 원주생산자공동체는 한살림운동과 역사를 함께해 온 곳이다. 원주에서 박재일 씨와 함께 소비자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운동을 하고 한살림을 준비했던 사람들이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서정희 씨다. 백운산 아래 회촌마을, 마을 입구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다가 다시 하나로 만나는 길 끝에 ‘흥업우리맛식품’이라는 안내판이 나타났다. 서정희 씨가 15년째 강원 전통의 막장과 쌈장, 청국장을 만드는 가공공장이다.
“장은 전부 봄에 담가요. 그러니까 막장도 가을에 만들어 둔 메주로 3월 초에 담가요. 막장은 원래 강원도에서만 먹던 장인데, 된장이랑 쓰임이 비슷해요. 가끔 쌈장으로 착각해서 이거 어떻게 먹느냐는 전화가 오고는 하는데, 된장처럼 국이나 찌개 끓여 먹으면 돼요. 된장은 메주를 띄워서 간장을 빼고 남은 것으로 만드는데, 막장은 간장을 안 빼고 바로 만드는 게 달라요. 강원도 콩으로 만든 메주에 보리밥, 엿기름, 고추씨 빻은 것을 버무려서 항아리에 담고 천일염을 덮고 면 보자기를 씌워서 유리 뚜껑을 덮어 1년여 숙성시켜요.”

 


 

콩을 삶을 때는 역시 무쇠 가마솥이 제격. 전통 방식으로 제대로 맛을 내려면 무쇠솥이 꼭 필요하지만, 녹이 쉽게 슬기 때문에 수시로 닦고 기름칠하느라 손이 많이 간다. 뚜껑만도 무게가 어마어마하여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마당에 커다란 전통 항아리 195개가 줄지어 서 있다. 그중 올해 담근 게 92개다. 뚜껑마다 항아리에 막장을 담은 날짜가 쓰여 있다. 2년 숙성시킨 막장이 제일 맛있다는데 물량이 부족해 그렇게 못 하는 게 아쉽다. 항아리 크기가 제각각이라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 한 항아리에서 막장 100개 분량이 나온다. 가을에 메주 쑬 때, 봄에 막장 담글 때 일이 제일 많고, 그다음에는 항아리를 잘 살피며 순서대로 퍼서 포장하여 내보내면 되니 좀 수월하단다.
“막장은 햇볕을 잘 받아야 해서 전부 1년 내내 유리 뚜껑을 씌워 놔요. 여름에는 화르르 끓어올랐다 식었다 하는데 그러면서 맛이 드는 거예요. 항아리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니까 항아리 세 개에서 푼 걸 섞어서 내죠.”
공장 안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검고 커다란 무쇠솥이다. 메주를 쑤고 청국장 담글 때 쓰는데, 잠시라도 방심하면 금세 녹이 슬어 버리기 때문에 수시로 기름을 발라 가며 보살펴야 한다. 메주는 전통 방식으로 직접 만들어 쓴다. 콩은 원주생산자공동체에서 기른 걸 우선으로 수매해 쓰는데 요즈음에는 양이 부족해서 원주의 농협이나 가톨릭농민회를 통해 충당하고는 한다. 특히 지난해 콩의 작황이 좋지 않아 애를 먹었다.
“우리 막장은 꼭 강원도 콩으로 만들어요. 여기는 날씨가 추워서 콩 맛이 더 달거든. 그만큼 다른 데 콩보다 비싸요.”
서정희 씨의 고향은 충북 단양이다. 강원 원주 출신의 남편 고 임광호 씨를 만나기 전에는 막장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이 마을에 와서 시어머니와 동네 어른들에게 배워서 담그기 시작한 지 어느덧 30년, 이미 전통의 맛을 인정받은 지 오래다. 막장 외에 쌈장과 청국장도 만든다. 쌈장은 막장에 한살림 성미고추장을 섞어서 만든다. 청국장은 콩을 10시간가량 불렸다가 무쇠솥에 6시간 동안 삶은 다음 바구니에 떠서 온돌에서 2박 3일 숙성시킨다. 청국장은 보통 1주일에 한 번씩 담그는데 겨울에는 인기가 많아 두 번도 담근다.

 

 

막장 100kg가량이 들어가는 크기의 전통 항아리는 특별히 주문 제작해야 한다. 천연 잿물을 발라 만드는데 한 개에 50만 원이 넘는다. 필요할 때마다 주문해서 들여오다 보니 항아리마다 크기와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소협에서 일하다 남편과 함께 회촌마을로 귀농
서정희 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19살 때 소식지를 보고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시작했다. 동네 신용협동조합(신협)에서 일하던 중에 원주에서 소비자협동조합(소협)이란 걸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사회개발위원회에 소협 회계 공부를 하러 갔다가 임광호 씨를 만났다.
“그 사람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데, 그전에 내가 고향에서 가톨릭농민회 할 때 청년 모임에 교육하러 오기도 해서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었어요. 그땐 그냥 그런 사람이 있나 보다 했는데, 원주에서 그 사람에게 회계를 배우고 같이 일하면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어요. 스물둘에 딸 아이 낳고. 그때 아이 아빠는 사회개발위원회 막내로 박재일 회장과 함께 한살림 준비해서 1986년에 서울에 한살림농산 열 때쯤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혔으니까 이제 귀농해야겠다는 거예요.”
고향 집에서 농사를 크게 지어서 그 어려움을 잘 알던 서정희 씨는 크게 반대했지만 끝내 남편 고집을 꺾지 못하고 가톨릭농민회의 지인이 사는 회촌마을로 와서 원주생산자공동체를 만들었다. 논을 조그맣게 장만해 벼농사를 시작했다. 공동체에서 옥수수 농사도 함께 지었다.
“그러던 중에 한살림에서 장아찌랑 밑반찬을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처음에는 공동체 사람들과 하나씩 나누어서 만드는데 다들 너무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포기하고 저랑 한두 사람만 남았어요. 그런데 이 주변이 상수원 보호구역이라서 절임류는 만들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장류로 바꾸어서 우리 밭에서 난 콩으로 막장을담그기 시작했어요.”

 

 

(왼쪽)뚜껑 위에 왜 돌이 올려져 있을까? 항아리들이 너무 많아서 어디까지 펐는지 헷갈리지 말라고 돌을 얹어 표시한다. (오른쪽)똑같이 담가도 항아리마다 막장 맛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서정희 씨는 맛을 고르게 맞추려 항아리 세 개에서 퍼서 섞는다.

 


처음엔 집에서 조금씩 담갔다. 아이들 온돌방에서 메주를 띄웠는데, 아이들이 학교에 갔다 오면 친구들이 청국장 냄새난다고 놀렸다며 투정 부리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옆에서 곧잘 포장 일을 돕고 심부름을 했다. 그렇게 소박하게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조금씩 규모를 늘려 2002년에는 흥업우리맛식품을 세웠다.
“똑같은 재료로 똑같이 만들어도 이상하게 사람마다 맛이 달라요. 우리 집 장맛이 좋다는데 비결은 나도 모르겠어요. 그냥 ‘기본을 지키자’는 게 예나 지금이나 내 생각이에요. 다 바뀌어도 장맛과 김치 맛은 지키고 싶어요.”
아들 임민하 씨가 2012년부터 함께 일하고 있다. 처음에는 콩 자루 하나도 못 들어서 서정희 씨에게 타박을 듣기도 했는데 3년쯤 지나니 이제 일을 좀 알겠다고. 장에 관한 공부도 열심이고 꼼꼼한 성격이라 위생이나 일하는 절차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임민하 씨는 최근 한살림에서 청국장 용량을 작게 만들어 달라고 해서 용기와 포장을 새로 만들고 비용 계산을 하느라 바빴다. 이제 곧
본격적으로 작은 용량 생산에 들어가는데 청국장 모양 만드는 일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야 해서 그만큼 힘이 많이 드니 걱정이라고. 요즘은 식구가 적으니 적은 용량을 찾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러면 포장 쓰레기가 늘어나 환경에 해를 끼치니 걱정이다. 임민하 씨는 요즘 한살림 사람들을 만나면 꼭 그 두 가지 이야기가 같이 나온다며, 당장은 작게 만들지만 장기적으로 고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일에 매달려서 다른 데 신경을 못 썼는데 이제 아들이 일을 잘하니 올해는 농민운동을 적극적으로 해 보려고 해요. 이대로는 우리 농업이 다 죽겠어요. 다음 주에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총회가 있어서 거기부터 가야 해요. 게다가 한동안 중국에서 수입하는 먹거리에 의존해 왔는데 최근 외교 관계가 나빠지니 당장 걱정이잖아요. 꼭 먹어야 하는 건 우리가 길러야 안심인데.”

 

 

아들 임민하 씨가 함께 일하기 시작한 지 5년이 되었다. 원리 원칙에 철저하고 신중한 성격이어서 가끔 서정희 씨는 일이 느리다고 타박하기도 하지만 그 꼼꼼함이 든든하다. ‘막장에는 왜 보리밥을 넣을까?’하는 사소한 의문에도 자료를 찾아 가며 공부한다. 강원도는 날씨가 추워 발효가 더디므로 보리밥을 넣어 발효를 돕는데, 자칫 기온이 안 맞으면 장이 쉬어 버리니 조심해야 한다.

 

 

욕심내면 생명운동 못 하니까
요즘은 농사일보다 장 쪽에 주력하고 있다. 4월에 옥수수 파종을 하면 7월 중순에 수확하고 그 옥수숫대 옆에 콩을 심는다. 서정희 씨네 밭은 원주생산자공동체 작업반장이 맡아서 농사짓고 오히려 서정희 씨는 조금 돕는 정도다. 이제 곧 퇴비 넣는 일을 시작할 참이다. 공동체 사람들이 멀리 퍼져 살아서 한동네 사는 다섯 집만 자주 보는데,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하는 전체회의에는 다들 꼭 모인다. 예전에는 공동체 회의를 하면 지역 생협 실무자들도 오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서로 잘 보지 못해 아쉽다고.

 

 

3~4월에는 옥수수, 7월에는 콩을 심어 이모작한다. 공동체에서 출하 날짜에 차이를 두기 위해 파종하는 날짜를 간격을 두고 정한다. 서정희 씨네 밭은 아직 파종할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예전에는 생산자들이 물품을 전부 한살림물류센터로 직접 가지고 갔는데, 요즘에는 지역에 있는 집하장에 가져다 놓으면 와서 실어 가니까 한살림 실무자들 만날 기회가 통 없어요. 그때는 검수하는 동안 기다리면서 다만 10분이라도 실무자나 다른 지역에서 온 생산자들과 차를 같이 마시고 이야기하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그게 없어져서 참 아쉬워요.”
지금껏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2004년 남편 임광호 씨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것이다. 연년생 자녀가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으로 아이들도 한창 예민
한 때라 충격이 컸을 텐데, 서정희 씨는 자기 자신도 2~3년 동안은 정신을 못 차렸노라고 했다. 그저 아이들이 저절로 잘 자라 줘서 고맙다고. 가족과 공동체 사람들 덕분에 그 시기를 견뎠다. 다들 욕심내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서로 상대를 더 챙기며 사는 것 같다고. “하긴, 욕심내면 생명운동 못 하니까” 하고 웃으며 덧붙인다.
서정희 씨는 지난해 말 할머니가 되었다. 임민하 씨 부부가 딸을 낳았다. 임민하 씨의 장모는 서정희 씨의 동갑내기 성당 친구다. 바로 어제가 손녀 백일잔치였는데, 원래 머리가 하얗게 세었는데 백일잔치 때문에 오랜만에 머리 염색까지 했다고. 올여름에는 한살림 실무자로 일하는 딸도 아이를 낳을 예정이어서 곧 손주가 둘이 된다. 어머니와 아들은 생산자고 딸은 실무자니 온 가족이 한살림에서 일하는 셈이다.
“옆집 밭에 햇빛 발전기를 설치했던데 봤니? 전기가 얼마나 생산될까?” 마당 너머 밭을 내다보다가 문득 서정희 씨가 아들에게 묻는다. 요즘 동네에서 화제라고. 임민하 씨도 궁금해서 벌써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곧 공장 근처에 집을 지어 이사할 계획인데 가정용 햇빛 발전기를 설치할까 고심 중이다. 공장 옥상 같은 데도 설치할 수 있다고 들어서 더 자세히 알아볼 예정이라고. 지난해 서정희 씨는 ‘전기를 쓰지 말고 핵발전소를 줄이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동네 친구 권유로 집에 화목난로를 설치했다. 효율이 높아서 장작도 조금 들고, 덕분에 난방비도 확 줄었다고. 장작은 비싸므로 큰 통나무를 사서 임민하씨가 열심히 다 쪼개 두었다. 앞으로 3년은 걱정 없다니 대단하다.
전통을 지켜 농사짓고 장 담그는 일에도 열심이지만, 서정희 씨는 삶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그는 주변에, 자연에 덜 해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아 서로 배우고 의지를 북돋우며 산다. 서정희 씨의 바람처럼 우리 농촌과 농업을 살리는 데 많은 사람이 관심과 힘을 모았으면.

 

 

백운산 자락 회촌마을, 귀한 막장이 익어 간다. 햇볕을 잘 쬐게 해줘야 하므로 1년 365일 내내 유리 뚜껑을 씌워 둔다. 그러나 가정에서 쓰는 작은 항아리는 그랬다가는 장이 다 말라 버리므로 시간을 정해 햇볕을 쬐게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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