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호 2017년 3월호 살림,살림

[ 땅땅거리며 살다-전남 함평 천지공동체 김희석·신정옥 씨 ]

쑥도 사람도 쑥쑥 자란다

글 이선미 편집부 _ 사진 류관희

“사람들은 자기 몸을 위해서 친환경을 사 먹어야 할 것이고, 우리는 사람들이 원하는 값어치 있는 농산물을 키워 줘야 한다는 생각. 소비자는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농산물을 사 먹고 우리도 피땀 흘려 농사짓는다. 나는 거기에서 멈췄었어요. 그런데 인제사 내가 밥상살림·농업살림·생명살림 세 가지 살림 정신을 생각하게 됐어요. 한살림은 완성된 사람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들어와서 완성되더라고요."

 

 

근처 마을에서 품을 팔러 온 이웃들과 함께 한 컷. 다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 엄마, 엄마 친구”들이다. “‘오늘 몇 봉지 나갑니다. 어디에서 수확합니다’까지만 이야기하면 다 알아서 해 주세요.”

 

 

“쑥 크는 소리에 잠 못 잔다고 했어요”
봄은 새싹으로 온다. 너른 들판에서 새싹이 움트는 2월 중순의 남도는 코앞에 봄을 앞두고 있었다. 햇볕에서 더운 기운마저 느껴졌다.
전남 함평의 한 컨테이너 창고에서 김희석 씨는 수확한 쑥을 포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창 출하하는 시기라 매일 작업을 하고 있단다. “하루에 쑥 캐는 사람 여덟 명, 포장하는 사람 일곱 명이 들어가요. 겨울 채소가 손이 많이 가요. 조합원들이 살 때 200g 한 봉지에 3~4천 원 할 텐데, 인건비가 물품 가격의 절반 이상 될 거예요.”
쑥 농사지은 지 이제 9년. 김희석 씨는 주로 하우스에서 쑥을 키운다. “나는 쑥을 심으면 무조건 잘될 줄 알았어요. 그래서 노지 한 5천 평(약 1만 6천530㎡)에 쑥을 심었지요. 처음에는 너무 좋았는데 여름 되니까 풀을 못 잡아. 더는 못 하겠다 싶었죠. 그런데 하우스에서 하니까 풀이 잡히는 거예요.” 그런 연유로 지금은 노지 밭은 소규모로 유지하면서 200평(약 660㎡)짜리 하우스 네 동에서 쑥을 기르고 있다. ‘매우 어지럽거나 못 쓰게 된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괜히 쑥밭(쑥대밭)이겠는가. 그만큼 노지에서 쓸 만한 쑥을, 게다가 유기농으로 키우기는 보통 어렵지 않을 것이다.
김희석 씨는 쑥 심기 한 달 전에 먼저 유기농 약제로 땅을 정리한다. “그렇게 안 하면 진딧물이 생겨요. 식물 추출물로 만들어진 거라 땅에는 영양제 역할도 하고요.” 쑥은 될 수 있으면 해마다 새로 심지 않고 유지하는 게 좋다고 한다. “유지된 쑥이 훨씬 건강해 보여요. 바람을 타도 버티고요. 그런데 유지하려면 풀을 열 번은 매야 돼요. 열 번을 매서 살아남는다는 보장만 되면 맬 텐데, 보장도 없거든. 그래도 올해는 경비가 좀 들더라도 싹 유지해 보려고 해요.”

 


 

김희석 씨는 하루 세 번 칼 16자루를 간다. 일꾼 한 사람당 칼을 2자루씩 쓰는데, 짧은 칼은 쑥을 빨리 베는 데 좋고 긴 칼은 바닥에 바짝 붙여 베는 데 쓴다. “바닥에 붙여 베면 줄기가 아니라 뿌리에서 새순이 나오니까 훨씬 건강하게 나오지. 칼이 안 들면 능률이 떨어지고 일하는 사람들 팔이 아파 힘들어요.”

 

 

쑥은 낮 기온이 25℃, 밤 기온이 10℃일 때 가장 잘 자란다고 한다. “쑥이 너무 잘 자라니까 ‘마을 개들이 쑥 크는 소리에 잠 못 잔다’고 했어요. 지금은 하우스 창을 닫아 놓으면 내부 온도가 30℃가 넘어요. 그럴 때 환기 한 번 시켜 주는 게 약 한 번 치는 것 같은 효과가 있어요.” 김희석 씨는 어떤 농사든 공통된 노하우는 “주인이 자주 와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겨울 동안 하루에 두세 번씩 와서 살펴보고 환기시키고 했어요. 물론 기술적인 부분이 축적돼야 하지만 ‘식물은 주인 발소리 듣고 자란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동물도 한 번 쓰다듬는 것과 두 번 쓰다듬는 게 다르잖아요? 내가 키우는 개처럼 식물도 그렇더라고.”
그래도 농사는 뜻대로 되지 않아서 지난해에는 냉해를 심하게 입었다. 고심한 끝에 김희석 씨는 자라는 쑥 위에 부직포를 덮어 두었다. “부직포가 좋은 게 기온이 높을 때는 낮춰 주고 밤에는 2~3℃ 높게 유지해요. 부직포 덮는 것도 농업기술센터에 전화해서 확인하고 했는데 불안했죠. 이걸 해서 실패하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올해는 냉해를 덜 입었어요.”
농사는 잘됐는데 공급할 일이 문제다. “지난해에는 첫 공급을 2월 23일에 했는데 올해는 2월 7일에 처음 나갔어요. 날이 따뜻해서 2주나 당겨졌지요. 그런데 지난해 대비 주문량은 절반밖에 안 돼요. 지금이 없어서 못 팔 때
인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김희석 씨는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쑥뿐만 아니라 다른 물품도 전체적으로 구매가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살림이야기》 2017년 2월 호 ‘농자천하지대본’의 “장기 불황과 사회 양극화로 중산층이 가격을 중요시하는 ‘효율적 소비’의 비중을 늘리면서 개별 가계의 친환경 농산물 소비가 급격하게 감소했다”는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신정옥 씨의 부모님에게 물려받아 운영해 온 ‘호암떡방앗간’은 생긴 지 30년이 넘은 역사적인 공간. “지금 하우스 있는 곳 뒤편이, 호랑이 닮은 바위가 있다고해서 지명이 ‘호암’이에요. 우리 장인어른이 거기 태생이라 방앗간 이름을 따 왔다고 해요.” 부부가 4남매를 키우고 한살림 농부가 될 수 있게 한 든든한 버팀목이다.

 

 

방앗간 사장에서 한살림 농부로
남편 김희석 씨가 농사일을 주로 맡고 있다면 아내 신정옥 씨는 일꾼 챙기는 일과 방앗간 운영을 맡고 있다. 바로 이 방앗간이 부부가 쑥 농사를 시작하고 한살림 생산자가 된 계기이다. “원래 우리는 친정 부모님이 하시던 방앗간을 물려받아 하고 있었어요. 시골 방앗간은 할머니들이 주요 고객이에요. 시골에서 기름 짜고 고춧가루 빻아서 도시로 보내잖아요. 그런데 할머니들이 해마다 너무 많이 돌아가셔서 일거리가 크게 줄어든 거예요. 고령화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거죠.” “방앗간 해서는 4남매를 못 키우겠다”는 생각에 부부가 생각한 부업이 바로 쑥농사. “직접 농사지은 쑥으로 쑥떡을 만들어 팔려고” 시작한 일이 본업이 된 셈이다.
“쑥 농사 시작하고 어마무시하게 고생했어요. 애기 아빠가 관절 수술 다 했거든요. 고생을 겁나 하고 고만둘 참에 한살림을 만난 거예요.” 신정옥 씨는 한살림이 쑥을 팔아서 좋은 것만이 아니라 사람이 ‘힐링’이 되더란다. “시골에서는 쑥이 돈이 되는 작물이 아니에요. 풀이지. 그래서 밭에 쑥 심는다고 하니까 어른들이 ‘저 미친놈’이라고 했어요. 쑥대밭 만들려고 하냐고. 거기다 친환경 한다고 하니 제정신 아닌 사람이라는 거예요. 지난가을에 쑥에 벌레가 엄청 많았는데 사람 손으로 일일이 잡았거든요. 그런데 한살림에 물건을 내니까 위로가 되더라고요.”

 

 

쑥을 포장하는 일도 마을 사람들이 맡아 주고 있다. “하우스 쑥은 부드러우니까 노지 쑥보다 빨리 물러요. 대신 거친 잎까지 다 먹을 수 있지요.” 포장 작업이 이루어지는 창고 안에는 쑥 향이 진동한다.

 


이웃들이 보는 눈도 달라졌다. “시골이 굉장히 보수적이잖아요. 저놈이 쓸 만해야 도와주지, 못쓸 것 같으면 절대 안 도와줘요.” 전에는 일할 사람이 없어 이맘때면 부부와 4남매가 다 일에 매달렸는데 이제는 동네 분들이 일하러 온다. “다 근처 마을에서 오세요. 우리가 운이 좋은 거죠. 저분들이 다 우리 방앗간 손님들이고, 친구 엄마고 엄마 친구고 그래요.” 대부분 70~80대로 조미료가 많은 식당 밥을 잘 못 먹는 일꾼들을 위해 신정옥 씨는 매일 아침 점심 두 끼에 새참까지 직접 해 나른다. “일하는 분들 보면 옛날 시골 품앗이하듯이 재밌게 일하고 돈도 벌고 그러는 것 같아요. 연세가 많아 딱히 용돈 벌 자리가 없거든요. 그래서 하고 싶은 분들은 다 나오라고 해요. 대신에 돈을 조금씩 덜 받더라도 사람 수에 따라 일감을 나눠서 하자고 하죠. 다 좋다고 하세요.”

이웃들이 여러모로 도와준다고 해도 농사와 방앗간 일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다. “추석이면 한 달간 방앗간에서 죽어라 일해야 해요. 추수 끝나면 또 방앗간이 바빠요. 떡 몇 번 하면 설이 오고, 그러다 보면 딱 이때가 돼서 쑥 내야 되죠.” 신정옥 씨는 “명절이 지나면 아기 낳은 것처럼 온몸이 아파 몸조리를 한 달 정도 해야 한다”고 했다. “방앗간도 진짜 고단한 일이거든요. 정말 고단한 일이에요.”
그럴 때도 한살림의 일원이라는 게 힘이 됐다. “나는 나만 고생하는 줄 알았어. 그런데 한살림 물류센터에 갔는데, 여름인데 스팀 속에서 병 씻는다고 겁나 고생하더구만. 한쪽은 냉동실에서 고생하고. 보면서 한집 식구 같은 마음이 들었어요. 또 생산하다 보면 생산자들끼리 갈등이 있잖아요? 미움이 왜 안 올라와, 올라오지. 그런데 상대방 손을 보면 그 손이 눈물 나. 나중에 ‘그 사람 손이 그랬어. 내 손보다 더 험했어’ 생각이 들면서 용서가 되더라고요.”

 

 

(왼쪽)신정옥 씨가 직접 키운 쑥으로 만든 쑥떡을 자르고 있다. “원래는 쑥을 더 넣었거든요. ‘쑥을 많이 넣어서 떡을 해 주면 잘 팔릴 거야’ 생각했는데, 쑥을 너무 많이 넣어도 기호가 떨어지더라고요. 제일 맛 좋은 혼합 비율이 쌀 80%, 쑥 20%라는데 내 보기엔 색도 희끗희끗하고 그래서 30% 정도로 맞춰요.” (오른쪽) 노지 쑥은 이제 새순이 나는 중. “이게 진짜 새 기운을 받아서 올라오는 거예요.” 처음 쑥을 심으려고 땅을 빌릴 때는 다들 밭 버린다고 안 빌려 줬단다. “예전에는 땅이 없어서 힘들었는데, 요즘에는 땅을 벌 사람이 없어요.”

 

 

공동체와 함께 더 큰 꿈 꾼다
한살림 하면서 느끼는 아쉬움과 어려움도 제법 있다. “오늘 수확한 쑥이 그다음 날 아침에 물류센터에 도착하면 그날 매장에 깔리면 좋은데, 하루걸러 깔리니까 품질이 완전 달라요. 그런데 품위가 안 좋으면 생산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항의가 들어오니까 포장에 출하일자 도장을 찍어야 할 것 같아요. 도장 하나 찍는 것도 장난이 아닌데 말이죠.” 신정옥 씨는 안 그래도 없는 시간에 해야 할 일이 많아진 게 문제다. “한살림 하면서 생각지 않았던 일을 하게 됐어요. 친환경 농사를 짓고 싶어서 온 것인데, GMO 반대도 하러 가야 하고 백남기 농민 추모 집회에도 가야 하지요. 우리가 틀림없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일들이긴 한데, 농사짓다 보니 시간이 없어 허덕이게 되더라고요. 하긴 해야 하는데 농사철과 겹치면 너무 버거울 때가 있어요.” 그러나 그 덕에 신정옥 씨는 “내가 사는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고 했다. “집회를 간다 하더라고. 나는 ‘데모’하는 세상을 살았는데, 그런 일이 있으면 도망가야 한다고 배운 사람인데 말이죠. 어떨 때는 힘들지만 구성원이니까 해야 하겠다, 책임을 져야 되겠다 싶죠.”

농대에 간 아들이 몇 년 뒤면 부부와 함께하며 힘을 보탤 것이다. “예전에는 자식이 귀농한다 그러면 마냥 좋아했는데, 지금은 귀농인들이 적응 못 하는 것처럼 후계농들도 부모와 안 맞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해요. 남이 하는 건 안 보면 되는데 자식은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잖아요. 안 맞는 게 있으면 대화로 풀어 나가면 될 거 같은데 실제로는 잘 안 되더라고.” 김희석 씨는 “기반을 쌓았다는 건 그만큼 고생을 했다는 뜻”이라며, 아들이 농사를 고생 없이 쉽게만 하려고 하진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부부는 결국 잘해 나갈 것이다. 모진 소리 하던 이웃들과도 이토록 도탑게 지내는데, 하물며 같은 꿈을 꾸는 아들이야 무슨 걱정일까. 부부의 뚝심과 인정이 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넘쳐흐르는 것이 기대될 뿐이다.
김희석 씨는 기회가 되면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지역물품을 내고 싶다. “우리 공동체가 젊고 활력 있고 기동성도 있으니까 ‘준비해서 하자’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 명이 소량 다품목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결성된 지 만 3년이 안 된 천지공동체는 “젊은 친구들끼리 모였는데도 일을 나누며 같이 하는 게 된다”고 한다. “쑥 같은 경우 9년을 투자해서 손해 봐 가며 이제 자리가 조금 잡혔어요. 그래서 신규로 한 농가 늘렸고 예비생산자도 있어요. 소비가 늘어서 늘린 게 아니라 내가 내는 양을 좀 나눠서 한 농가 더 같이 가자는 거죠. 우리 공동체가 그렇게 하다 보니까 구성원이 처음에 7명이었는데 지금 25명이에요.”
농업이 어려운 지금, “우리 공동체는 서로 희망적인 생각을 공유한다”는 김희석 씨의 말이 인상 깊었다. “각자 나름대로 주장이 있을 텐데도 공동체를 다 따라오는 모습을 보고 우리 공동체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단다. 사실 운이 좋은 건 이런 생산자가 보살펴 주는 사람들 아닐까.
농업이 어려운 지금, 농업의 현장을 지켜 주는 모든 생산자에게 더욱 고마운 3월이다.

 

 

“ 쑥을 갖고 어떻게 해 볼라고 한 것이 여기까지 왔어요. 농사를 소규모로 알차게 지으면 좋은데, 소득 때문에 규모를 늘리다 보면 주인이 내다보는 시간이 줄어들게 돼요. 그런 부분을 더 열심히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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