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호 2017년 4월호 살림,살림

[ 책방 주인장의 책과 삶-그림책에서 찾은 인생 답 ]

“오, 괜찮은데?”

글 알모

다시, 봄입니다. 봄을 맞는 저마다의 감회가 있겠지만 내게 이 봄은 무척이나 특별해서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어린이·청소년 전문 서점 주인장으로 맞는 열 번째 봄이며, 공간을 옮긴 책방에서 맞는 첫 번째 봄입니다.
지난해에 처음이자 마지막일 책방 이사를 단행하며 생각이 많았습니다. 참고서, 학습만화 없는 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수익은커녕 매달 운영비 마련을 위해 분투해야 하는 서점을 유지하는 건 예상보다 힘든 일이었습니다. 내가 일하는 책방의 생존을 ‘기적’이라 표현하신 분이 있습니다. 그 말에 동의합니다. 상황에 밀려 문을 닫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든 계속할 것인가? 계속한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삶의 출발선에 선 아이들에게
바람에 아직 겨울이 남아 있는 3월 어느 날, 초등학생이 되어 찾아온 이규와 그림책 《괜찮아 아저씨》(비룡소 2017)를 같이 읽었습니다.
동글동글 괜찮아 아저씨는 아침에 세수를 하고 머리카락을 셉니다. 한 가닥 두 가닥 세 가닥…. 아저씨에게 남은 머리카락은 열 가닥. 아저씨가 낮잠을 자는데 새들이 포르르 날아와 머리카락 한 올을 가져갑니다. 다음 날 아저씨는 세수를 하고 머리카락을 세 가닥씩 빨간 끈으로 묶습니다. 그러고 말합니다. “오, 괜찮은데?”
아저씨 머리카락이 몇 가닥 남았을 때부터였을까? 이규는 자연스럽게 “오, 괜찮은데?”를 맡고 있습니다. 아저씨의 표정과 말투로 “오, 괜찮은데?”를 외치며 새로운 머리 모양에 이름도 붙여 줍니다. 거미 다리 스타일, 비엔나소시지 스타일…. 함께 온 엄마에게 ‘또’ 읽어 달라던 이규가 집에 갈 때는 괜찮아 아저씨와 함께였습니다.
내가 일하는 책방에는 책을 고르는 몇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어린이도 좋아하고 어른도 좋아하는 책, 어린이는 좋아하는데 어른은 안 좋아하는 책, 어른은 좋아하는데 어린이는 안 좋아하는 책, 어린이도 어른도 안 좋아하는 책, 알모가 좋아하는 책, 이렇게 말입니다. 이 기준으로 볼 때 《괜찮아 아저씨》는 최고의 책입니다. 어린이인 이규도 좋아하고 어른인 이규 엄마도 좋아하고 알모도 좋아하는 책이니 말입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뭐니 뭐니 해도 그림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간결한 글이 있고 “오, 괜찮은데?”라는 추임새가 흥을 돋우긴 하지만 글이 없어도 그림을 읽을 수 있습니다. 표지 그림을 보면 괜찮아 아저씨가 벙글 웃으며 위를 보고 있습니다. 아저씨가 쓴 초여름 나무 색 모자에는 노란 새가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새는 무척 편안해 보입니다. 표지 그림만 들여다봐도 괜찮아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아저씨가 아홉 가닥 남은 머리카락을 세 개씩 묶은 장면입니다. 아저씨는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해서 기쁘고 그 모양새가 꽤 괜찮다는 것에 놀라워합니다. 그전에 아저씨는 몇 가닥 남은 머리카락을 가
리기 위해 모자를 쓰고 다녔을 것입니다. 열 가닥 남았던 소중한 머리카락이 아홉 가닥으로 줄었을 때 아저씨가 느꼈을 마음에 공감이 가는 어른인 나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아저씨가 느꼈을 마음 역시 공감이 갑니다. 아저씨가 진짜 ‘괜찮아 아저씨’가 될 수 있었던 건 이 지점부터가 아닐까요? 정말 괜찮지 않을 때에야말로 “오, 괜찮은데?”가 필요할 테니 말이지요.
해마다 봄이면 1학년이 되어 오는 아이들을 만납니다. 얼떨떨함, 부끄러움, 기대와 자랑스러움이 범벅 된 아이들의 표정은 얼마나 빛이 나는지요. 그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 줄 겁니다. 삶이 그들이 가진 것들을 빼앗을 때 이 책은 “오, 괜찮은데?” 다독일 수 있을 겁니다.

 

 

괜찮아 아저씨

김경희 글·그림 / 비룡소 펴냄 / 2017년

 

 

책이 던지는 질문과 답을 찾아
그 아이들이 자라면 무민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여기저기서 캐릭터 상품으로 팔리는 그 무민 말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고 좋아하지만 정작 읽어 본 사람은 드문 무민과 친구들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책방에 온 사람들에게 꼭 읽어 보라 권하는 책 중 하나인 《무민 골짜기의 친구들》(소년한길 2012)은 무민 이야기 여덟 권 중 유일한 단편집입니다. 제목 그대로 무민 골짜기에 사는 친구들을 두루두루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과 자기가 만든 노래가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방랑자 스너프킨이 너무 작아서 이름도 없는 생물 크리프를 만난 이야기, 동생에게 자기가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 훔퍼 이야기, 걱정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다가 마침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필리정크 아줌마 이야기, 세상에 딱 하나 남은 것으로 추정되는 용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 무민과 그 용에게 사랑받는 스너프킨의 삼각관계 이야기 등 아홉 편이 담겨 있습니다.
무민을 만나다 보면 4월이 거의 끝나 가는 어느 날에도 “눈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 “해님이 자작나무 가지 사이에서 붉게 빛났고, 서늘한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북유럽 어느 나라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무민과 스너프킨은 친구입니다. 새 친구 용이 등장하면서 그들의 우정은 흔들립니다. 무민은 용을 사랑하는데 용은 무민을 안 좋아하고 스너프킨을 사랑합니다. 그럴 때 무민과 스너프킨은 어떻게 했을까요? 무민 골짜기의 친구들 역시 사람이 끌어안고 살아가는 문제들을 갖고 삽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방법대로 해결합니다.
《무민 골짜기의 친구들》은 삶에 정답이 있다고 말하지도, 가르쳐 주지도 않습니다. 그저 작품 속 인물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 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안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는 그 안에 서 질문을 찾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그 안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에 감명을 받거나 울림을 얻으면, 그 이야기는 우리의 본질적인 일부가 되는, 혹은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낳고, 이 일부가, 그게 작은 것이든 광대한 것이든 상관없이, 말하자면 그 이야기의 후예 혹은 후계자가 된다.” - 《벤투의 스케치북》(존 버거 글·그림, 김현우·진태원 옮김, 열화당 2012), 90쪽
나는 존 버거의 이 말을, 문학의 힘을 믿습니다. 그래서 서점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학은 삶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과 답을 제시합니다. 어떤 질문을 취할지, 어떤 답을 취할지는 각자의 몫이겠지요. 내가 일하는 책방의 책을 읽고 자란 아이들과 어른들은 좀 더 많은 질문과 다양한 답을 찾게 될 것입니다. 나도 《괜찮아 아저씨》를 만나며 내 인생의 답 하나를 찾았습니다.
“오, 괜찮은데? 알모책방!”

 

 

 

무민 골짜기의 친구들

토베 얀손 지음·햇살과 나무꾼 옮김 / 소년한길 펴냄 / 2012년

 

 

↘ 알모(최영미) 님은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서 어린이·청소년 전문 서점 ‘알모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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