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호 2017년 4월호 [특집] 특집-삶은 곧 이야기입니다

[ 살림은 곧 삶이다 ]

삶의 현장을 계속 이야기하자

글 장영란

살림 사는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다니
《살림이야기》라는 잡지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이름부터 확 끌렸다. 살림, 이 얼마나 훈훈한가. 어쩐지 따스한 방바닥이 생각나고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솔솔 나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살림이야기》에 글을 쓰는 동안 편안했다.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1996년 귀농하고 나서다. 그때는 하루하루 모든 게 새로웠다. 처음 해 보는 농사, 처음 해 보는 시골살이에 맞물려 살림살이도 처음인 것처럼…. 오이 하나도 제때 심고 제때 따야 내 입으로 들어오더라. 그렇게 농사를 짓고, 콩이 있으니 메주를 쑤고 장을 담그며 ‘ㄱ’부터 배워 나가다 보니 나만 알고 넘기기 아까운 게 많았다. 그걸 세상과 나누고 싶었다. 내 경험이 누군가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자연의 흐름에 따라 하나하나 배우는 것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쓴 글이 정기간행물에 실린 걸 보면 내가 봐도 얼마나 생뚱맞던지. 정책, 주장, 세상을 바꿀 혁신과 같이 ‘대단한’ 주제를 어려운 문장으로 쓴 글들 속에 살림살이 이야기는 낯설었다. 그렇다고 내 글이 여성 잡지에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화려한 사진이 있나, 호기심을 자아내는 식재료가 있나. 그저 시골집 어디나 가면 올라올 법한 밥상 이야기뿐. 다달이 ‘언제 잘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살림이야기》에 살림 사는 이야기를 맘껏 쓸 수 있게 되니 얼마나 좋던지! 시댁에 갔다가 친정으로 온 기분이랄까. 마음이 편안하니 흐릿하던 게 또렷하게 보였다. 제대로 먹으려면 식재료만이 아니라 양념도 중요한데 그 이야기를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 그래서 간장, 된장, 고추장에서부터 조청, 식초에 이르기까지 양념을 손수 만드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쓸 수 있었다.

 

보고 듣고 나누다 보니 어느덧 내 삶에 녹아들다
쌀 씻어 밥 짓고, 집 안을 쓸고 닦고, 오늘은 식구들에게 무얼 먹일까 고민하고,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며, 경조사부터 공과금까지 일일이 챙겨야 하는 게 살림살이. 살림은 이런 자잘한 일들로 꽉 차 있다. 그런데 아무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삶의 현장이 묻히는 거다.
사람과 가족과 세상을 살리는 ‘살림 이야기’를 전면으로 모셔 와야 한다. 그래야 내 집 울타리를 넘어 세상과 만나 나 역시 세상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으리라. 내 어려움과 거기서 얻은 내 성취가 무엇인지 드러내고,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살림을 살고 서로 돕는 협동을 하며 자기 할 일을 찾아가는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힘이 되겠는가. 나도 《살림이야기》 덕에 지역에서 서로 도우며 살기, 물로만 머리 감기, 독일의 푸드셰어링과 공정나눔냉장고,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사는 법 등 여러 움직임을 만날 수 있었다.
“~해야 한다” “그러므로 ~가 문제다” 이런 이야
기에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이분법이 숨어 있다. 누구나 자기가 실제로 해 보면 안다. 옳기만 한 건 없다는 걸.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해 보았다”는 글이 소중하다. 이론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삶에서 실천한 내용 말이다. 때로는 대단한 성공담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겪은 이야기가 희망과 용기를 주기도 하지 않는가.
올봄 딸이 아기를 낳았다. 자기 집 안방에서, 출장을 와 아기를 받아 주는 조산사를 모시고. 나는 골반이 좁다고 수술을 해 낳았는데 나를 똑 닮은 딸은 자연분만, 그것도 가정 분만을 실천했다. 여러 사람이 “대단하다”고 한다. 딸이 중요한 결심을 하고 아이를 집에서 낳기 위해, 그러니까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낳아 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선택을 한 건 보고 배운 게 있어서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출장 다니는 조산사는 없었는데, 그 시절 집에서 아기를 낳은 이웃이 있었다. 그 덕에 한동안 우리는 모이면 그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아이가 자라는 걸 함께했다. 시작이 어렵지 한 사람이 그렇게 하니 또 누군가 아기를 집에서 낳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면 삼삼오오 모여 누구는 아기를 엎드려 낳았다네 서서 낳았다네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런 이웃들을 “이모”라고 부르며 자란 딸한테는 아기를 집에서 낳는 게 그렇게나 대단한 일은 아니었으리라.
가까운 이웃이든 먼 이웃이든, 얼굴은 몰라도 나와 비슷한 걸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를 자꾸 보고 듣고 나누다 보면 그게 내 삶에 녹아들지 않겠나. 시골서 살다 보니 가을이면 집집이 처마에 메주가 매달린다. 그러면 나도 ‘메주 끓여야지’ 하는 마음이 나고, 그렇게 마음을 내면 시작이 반이라고 장은 담긴다. 살림 이야기가 그래서 소중한 게 아닐까.

 

새로운 이야기 마당을 기대하며
그동안 《살림이야기》에는 집안 살림을 비롯해서 교육, 탈핵, 돌봄, 노후 대비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의 이야기가 실렸다. 이렇게 살림이란 건 집안을 보살피는 일에서부터 사회와 생명을 살리는 일까지 한 땀 한 땀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하는 것들이다. 한살림 생산자가 은퇴한 뒤 함께 모여 사는 노인 공동체를 다룬 글이 실렸을 때, 바로 이거다 싶었다. 나 역시 노후에 할머니 공동체를 만들어 자급하자고 지인들에게 말하고 다니니까.
그런데 그 글은 현실이 아닌 상상이었다. 토지 공유 글을 읽고도 무릎을 쳤다. 내가 아는 생산자가 자녀가 농사를 이어 하지 않는다면 그동안 가꾼 땅을 농사짓고자 하는 젊은이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이런 마음이 현실이 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살림이야기》가 종간된다고 한다. 아직 실천 사례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주제도 많은데 누군가의 선한 이야기를 이제 어디서 들어야 할까? 먼저 살림 이야기를 맘껏 펼칠 수 있는 장이 없어짐을 깊게 느끼면 좋겠다. 이게 사라지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마음만 모으면 대통령도 바꾸는 우리 아닌가. 살림을 이야기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느끼는 만큼 새로운 장이 나타나리라.

 

 

↘ 장영란 님은 전북 무주에서 농사짓고 사는 틈틈이 글을 써 《살림이야기》에 ‘제철살림’과 ‘우리를 먹여 살리는 꽃’을 연재했습니다. 자녀가 자기 살림을 살 나이가 되니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져, 먹을거리만이 아니라 문화도 자급자족할 수 있어야 젊은이들이 농촌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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