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호 2017년 4월호 살림,살림

[ 세계의 전환마을-미국 블루스톤 농장과 리빙아트센터 ]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만드는 사람들

글 _ 사진 현경

뉴욕 맨해튼에서 북쪽으로 기차를 타고 1시간을 가면, 숲속 호숫가에 평온하게 자리한 블루스톤 농장이 나온다. 블루스톤 농장은 오래전부터 성공회 수녀들이 영성 수련 농장으로 가꾸어 온 곳으로 ‘성령의 공동체’라고 불린다. 커다란 나무들이 반겨 주는 마당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텃밭, 오른쪽에 노천 욕탕이 보이고, 한가운데 커다란 흰색 이층 목조건물이 방문자들을 환영한다. 이 집이 나의 친구인 렝과 홈이 함께 시작한 리빙아트센터이다.

 

 

블루스톤 농장에는 수녀 4명과 라이프 코치 렝과 홈의 기본 가족 외에 예술가나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배우려는 예비 농부들이 임시 가족으로 함께 산다.

 

 

수녀 네 명과 동성애자 부부가 함께 살며 영성 프로그램을 만든다니 처음에는 좀 의아했다. 금욕하며 사는 수녀와 성적 자유와 축제를 가르치는 아이비리그 출신의 게이 라이프 코치가 함께하는 공동체의 삶은 대체 어떤 것일까? 이 공동체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그들의 만남이 아주 절묘한 신의 섭리임을 알게 된다. 지금껏 알아 왔던 종교·영성·노동·젠더라는 카테고리를 넘어 새로운 문명과 영성의 차원으로 들어가려면 이렇게 전혀 맞지 않을 법한 사람들이 만나 갈등하고 토론하고 사랑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블루스톤 농장 공동체에는 서로를 선택한 기본 가족 6명 외에도 임시 가족 5~6명이 늘 함께한다.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작가, 화가, 음악가나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배워 농부가 되려는 젊은이들이다. 모두 함께 먹고 자고 노동하고 명상한다.

 

 

성직자, 명상 지도자, 예술가, 농부 등이 함께 살아가는 블루스톤 농장.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으로 유기농사를 짓고 가축들을 방목하여 기른다.

 

 

아이비리그 출신 라이프 코치 렝과 홈
리빙아트센터를 시작한 렝 림은 싱가포르 출신의 성공회 신부이자 라이프 코치다. 나는 30년 전쯤 유니언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논문을 끝내 가고 있을 때 렝을 처음 만났다. 내가 프린스턴 대학 예배당에서 아시아의 여성 해방 신학에 근거한 설교를 했는데, 설교 후에 그 학교 학생이던 렝이 감명 깊었다며 나를 찾아왔다. 처음 만났지만 아시아계 학자와 학생으로서 우리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뒤 7년쯤 지나 내가 하버드 대학 초청교수로 아시아의 여성 해방 신학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그 교실에 렝이 앉아 있었다.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유니언 신학대학원을 거쳐 하버드 대학 신학부까지 왔다고 했다. 졸업 후 성공회 신부가 될 예정이었다. 그때 이미 동성애자로 커밍아웃을 한 렝은 수업에서 미셸 푸코의 성 담론과 아시아의 여성 해방 신학을 연결하는 발표를 하였다. 렝은 대낮에 반짝거리는 검은색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은 채 교실에 나타났다. 그는 학습된 젠더의 허구성을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학생들이 했던
발표 가운데 내 인생에서 가장 파격적인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고는 연락이 끊겼다가 10년 전쯤에 내가 유니언 신학대학원에서 가르친다는 소식을 듣고 렝이 찾아왔다.
렝은 그동안 삶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들려주었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성공회 성당 신부로 3년을 일했는데 사라져 가는 미국 교회에 자신을 걸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교리에 동의하기도 어려웠고 신부로 계속 일해서는 학자금 대출도 못 갚을 것 같았다고. 그래서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가서 MBA를 하고 세계의 CEO를 위한 영성 코칭을 시작했다. 렝은 기독교 영성만으로는 목마름을 채우지 못해 불교의 비파사나 명상을 배웠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비전 찾기 훈련에 여러 번 참석했다. 부유한 CEO들을 코칭하면서 인간의 문제는 재력 여부에 상관 없이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경험들로 인해 리빙아트센터를 시작했다. 렝과 결혼한 홈 누엔은 베트남 출신의 라이프 코치이며 비파사나 명상 선생이다. 홈은 베트남전쟁 때 보트피플로 미국에 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난민 청년들을 모아 그 삶의 고통과 열망을 알리고 차별 철폐를 위한 연극운동을 벌였다. 그러던 중 1980년대 ‘에이즈 대유행’이 미국의 게이 커뮤니티를 휩쓸었을 때, HIV/에이즈 예방, HIV/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운동을 일으켰다. 이런 활동 중 렝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되자마자 둘은 결혼식을 올렸다. 그 후 홈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마인드풀 리더십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홈은 피아니스트이고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이기도 하다. 렝과 홈은 내가 본 부부 가운데 가장 금슬이 좋고 대화가 잘 통하는 평등한 부부이다.

 

 

라이프 코치 렝과 홈이 운영하는 리빙아트센터. 농장 공동체 생활과 주말 수행 프로그램 등을 통해 새로운 인간·가족·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먹고 토론하고 감사하며
렝과 홈은 농장과 리빙아트센터를 통해 새로운 인간·가족·공동체를 만들고자 한다. 주말 영성 모임에 오는 이들을 보면 명문대 MBA 출신이나 건축·의료 등 전문직 종사자, 예술가가 많다. 대부분은 뉴욕에서 일하는데, 일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의 존재에 부응하는 노동의 의미를 이 공동체에 와서 찾으려 한다. 또 서로에게 힘을 주는 사랑과 성이 어떤 것인지 근원적으로 토론하고 찾아 나간다. 수행 프로그램에는 동성애자 지원 모임, 여성 대화 모임, 바이오다이나믹 농부 모임, 다양한 사람들이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의논하는 최고생산자(Prime Producer) 모임 등이 있다. 나는 최고생산자 모임에 초대되어 주말을 함께 지냈는데, 수행 방식 자체가 새로운 창조의 메시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금요일 저녁에 모이면 유기농 재료로 맛있고 몸에 좋은 건강 식단을 같이 차린다. 긴 테이블에 촛불을 켜고 꽃을 꽂고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 올려놓고 저녁식사를 여는 의식을 한다. 취향에 따라 와인이나 물을 잔에 따르면서 한 사람씩 인사를 한다. 옆에 앉은 사람이 이름을 부르며 환영한다고 하면 환영을 받은 사람은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답하며 잔을 들어 마신다. 아주 천천히 이름을 부르고 음료수를 마시고 모두의 눈을 맞추고 옆의 사
람을 환영한다. 이 의식과 동시에 우리는 다른 시간, 공간, 에너지 장으로 들어간다. 바쁜 맨해튼 사람이 아니라 슬로푸드를 느리게 먹는 12명의 가족이 되는 것이다. 4시간 동안 저녁을 먹으며, 가족들은 지금 삶에서 가장 감사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눈다. 식사가 끝날 때쯤이면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도 서로의 말을 가슴으로 듣게 된다. 함께 설거지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 잠에 든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면 각자 요가나 명상춤으로 몸을 풀고 같이 앉아 명상을 한다. 긴 명상 후에 브런치를 하는데, 퀴노아, 현미, 견과류, 과일로 만든 와플을 구워 산에서 채집한 메이플 시럽과 농장에서 키우는 소의 우유로 만든 버터와 함께 먹는다. 이곳 수행의 강점은 맛있고 신선한 건강 음식이다. 이렇게 좋은 음식을 매력적인 사람들과 나눈다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다. 3~4시간 동안 먹으며 수행 주제에 대해 토론한다. 내가 참여했던 수행의 주제는 ‘잘 사는 능력(thriveability)’이 무엇인가였다. 생존과 번영이 어떻게 다른가, 어떨 때 자신이 가장 잘 살고 있는 것 같은가 하는 질문에 참석자들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나는 ‘가장 자기답게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산다’는 대답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건축가, 인도 중매결혼 제도의 압박에 묶여 살다 온 여성, 예일 대학 MBA를 마쳤지만 더 이상 비즈니스 세계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네팔 여성, 자연 치유 의사, 조직 영성 코치, 대학 입시 과외로 생계를 잇고 자아실현을 위해서는 연극 대본을 쓰는 극작가, 건축 현장에서 저녁식사 대화 운동을 벌이는 젊은 건축업자, 유학생 등이 모여 나이·성정체성·직업·경제수준 등을 넘어 마음속 가장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에는 산행을 하거나 호숫가를 산책하고 마음 열기 훈련 등을 한다. 저녁식사에서는 수행 주제에 대해 더욱 깊이 파고든다.
일요일 아침엔 다시 브런치를 하며 이 주말 수행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나눈 후 함께 청소를 하고 농장을 떠난다. 회비는 각자 형편에 따라 기부 형식으로 모은다. 주말 수행은 선물로 받고, 자신이 내는 회비는 다음에 올 사람이 선물로 받는 형식의 선물경제이다.

 

 

4시간 동안 저녁을 먹으면서 수행 주제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식사를 마칠 때쯤 우리는 서로 가슴으로 이해하는 가족이 되어 있었다.

 

 

풍성히 살아 있는 사람들
블루스톤 농장과 리빙아트센터의 안내서에 영성 지도자인 하워드 서만 목사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세상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지 말라. 무엇이 너를 풍성히 살아 있게 하는지 물어라. 그리고 나가서 그것을 하라. 왜냐하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렇게 풍성히 살아 있는 사람들이기에.”
의식적으로 선택한, 임의의 가족 12명과 주말을 보내며 두 가지가 내 마음에 깊이 들어왔다. ‘가슴의 힘’과 ‘몸의 지혜’다. 함께한 이들은 감정지성이 잘 발달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듣는 자세, 공감 능력이 감동을 일으킨다. 또 대부분 몸이 빛나는 사람들이다. 그건 먹는 음식, 하는 운동과 춤, 명상 등이 서서히 만들어 낸 결과인 것 같다. 이들은 맨해튼에서 살면서도 미국의 거대한 사회구조라는 쳇바퀴에서 빠져나와 체제 이탈을 했거나, 아니면 아직 그 안에서 일하고 있지만 한 발은 이미 다른 세계를 디디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들이 주말 식탁 공동체 가족들과 만남을 통해 어떻게 풍성한 삶을 구현하고 문화와 세상을 바꿔 가는지는 시간을 두고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주말을 통해 이미 내 존재가 치유받고 있음을 느꼈다. 내 가슴과 몸에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블루스톤 농장과 리빙아트센터
누리집 chssisters.org / 전화 1-845-363-1971

 

 

↘ 현경 님은 스스로 ‘살림이스트’라고 칭하는 여성·환경·평화운동가입니다. 미국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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