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호 2017년 3월호 [특집] 환절기

[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6년, 일본의 이야기 ]

핵발전소 재가동에 반대합니다

글 김송이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로부터 6년이 흘렀다. 사고로 인한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2017년 2월 2일 도쿄전력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다이치 핵발전소가 가동을 멈춘 이래, 1번 핵발전소 안 핵연료 격납용기 2호기에서 시간당 최대 530Sv에 이르는 최대 방사능 수치가 기록됐다”고 한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측은 2021년까지 원격조종 로봇 등을 이용해 격납용기 안의 잔해를 수거할 계획이었으나, 이러한 높은 방사능 수치 때문에 계획대로 이행하는 것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로 인한 피해는 두 가지다. 하나는 환경오염이며 다른 하나는 사람들에게 미친 인적 피해다. 환경오염은 방사성 물질이 계속 흘러나와 대기나 바다가 오염되고 있다는 것이며 이것은 세상이 아는 사실이다. 여기서는 인적 피해에 관해 쓴다. 첫째, 어린이 갑상샘암 환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15년까지 어린이 갑상샘암 검사로 암일 수 있다는 진단을 받은 어린이가 175명, 확정된 어린이는 135명이었다. 그중 136명이 수술을 받았다. 둘째, 사고 난 지 벌써 6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피난살이하는 사람이 8만 명이 넘고, 이른바 재난과 관련하여 죽은 사람 수(불편한 피난살이나 가설주택이 원인)가 2천 명을 넘는다. 셋째, 자살자 수가 80명을 넘었다.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재난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렇듯 막심하다.

 

억울한 죽음, 이어서 싸우는 사람들
목숨을 끊은 사람에 관한 보도 가운데 하나를 소개한다. 2016년 11월 21일 TBS 방송의 JNN 채널에서 방영한 르포 프로그램 <바보가 아닌가? 이 나라는>이다.
64살의 다루이 히사시 씨는 7대에 걸쳐 물려받은 땅에서 유기농으로 쌀농사를 지으며 농부 된 보람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의 쌀은 학교 급식에도 쓰였다. 외아들을 후계자로 삼고 농업을 가르친 지 5년이 지났을 때, 2011년 3월 11일 지진이 왔다. 12일 핵발전소 폭발사고 뉴스를 보면서 히사시 씨는 아들 다루이 가즈야 씨에게 “봐라, 내가 말한 대로 됐잖아. 사람이 만든 건 이렇게 되게 마련이다. 미래를 향한 네 다리를 내가 잡아 버렸네”라고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히사시 씨의 집은 핵발전소로부터 60km 떨어져 있어 지진이나 해일 피해를 크게 입지 않았지만, 방사능 오염으로 농사는 못 짓게 되었다. 3월 23일, 히사시 씨는 아들에게 “너에게 틀린 길을 권한 셈이네”라고 한마디 남기고 다음 날 아침, 논밭이 바라보이는 큰 나무에 목을 매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즈야 씨는 아버지의 억울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아들은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도쿄전력과 싸우고 대대로 내려온 땅을 지켜 낼 마음도 먹었다. 아버지는 농업일지를 날마다 썼다. 거기에 3월 24일 ‘아버지의 죽
음’이라고 적고 자신이 이어 쓰기로 했다. 오염된 땅이지만 그냥 내버려 두면 영영 못 쓰게 된다. 못 먹는 쌀이지만 계속 농사짓자고 결심했다.
4월, 가즈야 씨는 도쿄전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서는 사고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2년 3개월 뒤 분쟁센터에서 화해를 권했다. 결과적으로는 이긴 것이다. 또 아버지의 농업일지를 교과서 삼아 쌀농사를 계속했다. 수확물을 버리면서. 가즈야 씨는 “후쿠시마 쌀은 아무도 안 사요. 내가 소비자라도 그럴 거예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2016년 수확량은 아버지와 함께 농사짓던 때를 능가했다.
“5년 동안은 분개심만 이글거렸어요. 나라는 (핵발전소를) 재가동하려고 하잖아요. ‘클린하고 안전한 에너지’? 어디가요? 누가 뒤처리해요?” 가즈야 씨는 과묵한 사람이다. 단도직입으로 해야 할 말만 한다. 그래서 사람들 가슴에 곧바로 들어오는지도 모르겠다. “소리 내는 사람이 없어지면 이 나라는 틀린 길로 가 버려요.” 그러고는 “한심한 나라예요. 하지만 이 나라에 태어났으니까 살 수밖에요”라며 끝내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JNN 채널의 <바보가 아닌가? 이 나라는>의 장면

 

 

고통의 원인은 아베 정부의 핵발전 추진 정책

가즈야 씨는 강직한 사람이다. 계속 농부로 살며 핵발전소 재가동에 반대하여 싸운다. 하지만 강하지 못한 피해자들은 어떻게 살아 나갈까? 보도를 통해 보거나 나 스스로 취재하여 알게 된 그들의 고통에 관해 써 본다.
피해자들은 무엇보다 가족 관계가 파괴되어 살아갈 의욕이 없어졌다. 또 일자리가 없어졌거나 주택 대출금이 남은 채 다시 살 곳을 찾으니 빚이 이중이 되어 경제적으로 한계에 처했다. 피난 지시가 해제되어도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다. 지역 커뮤니티가 사라져 이웃 관계가 깨진 삶을 견디기 힘들다. 또 피난처에서 받는 차별이나 왕따도 너무 괴롭다.
이러한 고통의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아베 정권의 정책에 있다고 본다. 핵발전 추진론자인 아베 총리는 피해자를 구제하는 일보다 나라의 체면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후쿠시마는 거의 수습이 됐습니다” 이 한마디로 아베는 2020년 올림픽을 도쿄에 유치하는 데 성공했고 인도에 핵발전 기술을 팔았다. 그러니까 어린이 갑상샘암 환자 수가 늘어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후쿠시마 외 지역까지 암 검사를 확대하는 것도 수용하지 않는다. 정부가 이런 태도를 보이니, 현실을 제대로 못 보는 사람들은 재난 피해자들을 얕잡아 본다. 교사나 학생이 피난 온 학생을 ‘세균’이라고 부르거나 “보상금 많이 받았지? 돈 갖고 와라”라고 공갈한다. 기막힌 일이다.
하지만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도 많다. 개그맨 마코&켄 씨는 국민의 눈을 가리는 데 혈안이 된 일본 정부나 도쿄전력에 대항하여, 기자회견 자리에 꼭 참석해 피해자 관점에서 의문점을 따져 답을 얻어 내며 공개하는 활동을 한다. 그것으로 니혼TV의 <개그맨 대 핵발전 사고-마코&켄의 핵발전 취재 2천 일>을 만들었다. 핵발전소로부터 2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다카노병원은 피난을 가지 않고 피해자들을 치료했다. 또 핵발전을 줄곧 반대한 바람에 교토대에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평교수로 지낸 고이데 씨는 지금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연하고 반핵운동을 호소한다.
지난 2월 11일, 아사히 신문 12면에 의견 광고가 나왔다. “막아 내자! 핵발전 재가동”이라는 제목으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 이름을 깨알 같은 크기로 쓰고 도쿄에서 열릴 <3월 4일 전국 대집회> 참가를 호소하며 “후쿠시마를 버리는 정치를 뒤집어엎자!”고 했다.
암운으로 뒤덮인 나라이지만 그나마 빛이 살아 있다.

 

 

↘ 김송이 님은 작가이자 번역가로, 재일본조선사회과학협회 회원,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후쿠시마에서 멀지 않은 이바라키에 살고 있습니다. 후쿠시마에서 떠나온 사람들, 후쿠시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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