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4호 2009년 봄

  • 살리는 사람, 농부
  • 그래도 씨를 뿌리는 당신이 희망입니다

    벼와 쌀 사이에 농부가 있습니다.
    쌀과 밥 사이에는 당신이 있습니다.
    밥과 똥 사이에는 내가 있습니다.
    그리고 똥이 다시 벼를 길러내는 밥이 되기까지
    온 우주가 그 곁에 있습니다.


    벼라는 풀 한 포기가 사람을 먹이는 쌀이 되기까지 온 정성으로 길러낸 사람 농부, 그는 우리를 먹이고 살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이 다시 농부를 살리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벼와 쌀과 밥과 똥이 하나로 이어져 온 우주가 서로가 서로를 살리듯, 이번 <살림이야기>의 특집 ‘살리는 사람, 농부’는 농부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부 농부를 생각하다에서는 ‘농부는 하늘이 내린 가난한 사람이다. 결국 가난한 사람만이 가난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농부 시인 서정홍 님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급하는 마을공동체의 농심을 잃어버린 농부는 생명을 살리는 농부가 아니다’라는 천규석 님의 글로 오늘 우리에게 농부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강운구 님 사진의 깊은 울림과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2부에서는 다양한 농부들을 각기 다른 형식으로 만나보았습니다. 통계청 발표로 우리나라 농가인구가 모두 318만 6천753명(2008년 말 현재 자료)이라는데 당신은 얼마나 많은 농부를 알고 계신지요. 충북 보은에서 네 살배기 일소를 부려 농사짓는 이철희 님부터 함평에 사는 농부 정물 님의 거침없는 목소리까지, 그리고 귀농 11년차 농부 부부, 대안학교에서 농사를 가르치는 농부 선생님의 고민, 어느 날 갑자기 농부가 되기 위해 떠난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이야기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영국 기독교 공동체에서 만난 농부 할아버지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와 이종구 작가의 ‘국토- 세 개의 풍경 展’에서 만나는 농부들도 새롭습니다.


    3부에서는 우리 모두가 농부로 사는 길을 모색해 보았습니다. 부모와 자식,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 그리고 농부 스스로 자기 몸을 돌보는 일 역시 모두가 생명을 살리는 농사라는 생각으로 귀 기울여보았습니다.

    크고 빠르고 화려한 것만 좇던 세계경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봄이 왔지만 짙은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운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춥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누군가는 또다시 농구와 씨앗을 챙기고 땀을 섞어 땅을 갈아엎고 있을 것입니다. 역사 이전부터 무수히 되풀이되어온 그 모습에서 우리들 먹고 사는 일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과 땅과 생명을 살리는 이야기를 하고자 태어난 <살림이야기>가 ‘살리는 사람, 농부’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더불어 석유문명의 종말에 대비하고자 강원도 두메산골에 제로에너지 하우스를 지은 이대철 님과 석유를 덜 먹고 덜 쓰는 ‘가까운 먹을거리’ 운동만이 진정으로 생명을 살리는 윤리적 소비의 길이라는 이야기에도 잠시 독자들의 눈길이 머물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2009년 봄, <살림이야기>의 농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렵고 힘든 시절입니다. 그래도 씨를 뿌리는 당신이 있어 우리는 모두 희망입니다.

    편집위원 김선미 모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