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1호 2008년 여름

  • 나는 너의 밥이고, 너는 나의 밥이다
  •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살림이야기 01호 특집 주제는 ‘밥’입니다. 글 첫머리에 함민복의 시 ‘긍정적인 밥’을 소개한 이유는 우리 사회에 부정적인 ‘밥’이 너무 많아서입니다. 죽은 시의 사회, 죽은 밥의 사회에서 밥같은 시 한편을 읽어 봅니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밥같은 시를 읽으면서 마음은 이미 굽어진 논길을 따라 걷습니다. 독자 분들과 함께 울퉁불퉁 매끄럽지는 못하지만 정성으로 지은 잡지를 따라가면서 논길을 걸어 보았으면 합니다. 쭉쭉 직선으로 뻗은 논길보다 굽어진 논길은 한 폭의 수묵화가 됩니다.

    인스턴트 말과 밥이 판치는 세상입니다. GMO(유전자조작작물),광우병 쇠고기 수입, 지구온난화, 고유가, 식량위기 등 밥상을 송두리째 위협하는 징후들. ‘밥이 하늘이고 생명’이라는 진의가 뼈 깊숙이 파고 듭니다. 하루 세끼를 먹으면서 하늘과 땅에 감사하고 농부에게 감사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요? 밥을 때우듯이 먹고서 밥을 이야기할 수 없듯, 땅과 하늘을 잇는 농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콘크리트 바닥에 내려놓고서는 밥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 밥 먹고자 하는 일인데 밥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밥보다 출세나 명예 아니 솔직히 돈이 더 좋아서 일까요. ‘농자지대본農者之大本’이 아니라 ‘부자지대본富者之大本’이 되어버린 세상. 밥을 돈으로 보는 세상. 돈을 밥으로 보는 세상입니다.

    농경지는 줄어들고, 땅은 황폐화 되어 가고 지역경제는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서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지고, 소중한 공동체의 삶은 무너지고, 풍요속의 빈곤입니다. 위정자들은 경제와 환경살림을 너무 멀리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농업이 살면 환경이 살고 생명이 살아난다는 절체절명의 진리를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일하고 살자가 아니라 일하고 죽어보자는 속셈입니다. 살림의 정치가 아니라 죽임의 정치입니다. 자동차, 반도체 속도의 경제에 목을 매달고 ‘경제 살리기’라는 낡은 구호로 관심을 돌리기에만 바쁩니다.

    지금의 현실은 한국만의 현실이 아닙니다. 세계 산업문명의 전체의 위기이기도합니다. 산업문명의 폐해를 진단하고 생명살림, 농업살림, 밥상살림의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시작한 한살림. 지난 한살림의 선언은 선언을 넘어, 오늘의 현실에서 그 실천이 더 절실해졌습니다. 제대로된 밥을 먹기 위해서는 땅이 살아나야 되고 농업이 살아나야 합니다. 쌀을 제외한 식량자급률이 5 퍼센트 를 밑도는 현실에서 ‘경제 성장’이라는 발상은 위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성장이라는 이름아래 얼마나 많은 가치들이 사라졌고, 사라지겠습니까. 이제부터라도 정부나 정당정치에만 기대어서는 안 됩니다. 시민이 주체가 되어 ‘밥상에서 세계’를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합니다. 밥상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세계가 보일 수 있습니다. 건강이 보이고, 땅과 하늘이 보이고, 교육이 보이고, 생명이 보이고, 이웃이 보이고...

    밥상에서 대화를 회복하고 가족과 이웃을 살리는 밥의 정체와 가치를 제대로 들여다 보는 마음가짐과 인식의 전환. 이제 마음에 불붙은 촛불은 밥상과 밥상을 연결시켜 생활자치운동으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살림의 섬들이 모여 살림의 대륙을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나만 생각하는 삶, 나만 먹는 밥, 밥그릇 챙기기에 바쁜 삶을 넘어 서야 하는 것이지요. ‘나는 너의 밥이 되고, 너는 나의 밥이 되는’ 서로 배려하고 희생하는 삶, 함께 나누는 삶이 담겨있는 ‘밥’의 참뜻을 알리고 이룰 때입니다.


    2008년 6월 유창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