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호 2012년 봄

  • 소, 牛여곡절
  • 어느 때 누구에겐들, 살아가는 이 순간이 익숙하기만 할까요. 매 순간이 전인미답의 길이고 가슴 떨리는 결정적 순간입니다. 요즘은 특히 그런 생각이 깊어집니다. 어떤 지침과 선행학습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초유의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그렇고, 2008년 무렵부터 진행되고 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균열과, 점점 더 심상치 않아지는 기후변화도 앞날을 가늠하기 어렵게 합니다. 파멸을 향해 굴러가는 세계를 향해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조금이라도 더 합리적인 정치권력을 세우기 위해 우선은 투표에 참여하고, 대안적인 정당을 지지하고, 일상에서 에너지를 덜 쓰는 실천이라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매년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계절의 변화는 늘 생전 처음 겪는 일처럼 경이롭기만 합니다. 추운 산길 걷다가 해 뜰 무렵 느껴지는 바람의 변화, 돌처럼 굳어있던 땅을 뚫고 돋아나는 냉이와 달래, 나뭇가지를 뚫고 내미는 나무의 새순들 모두 기적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맘때면 늘 우리 모두가 태양에 탯줄을 달고 살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숙연해지곤 합니다.
    이번호의 특집은 '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년 겨울에는 구제역 때문에 소 돼지를 파묻느라 뒤숭숭했는데 올해는 젖소 수소 송아지 값이 1만 원까지 떨어지자 급기야 키우던 소를 굶겨죽이는 참담한 일도 벌어졌습니다. 소가 시대변화를 읽는 열쇳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원고를 청탁하고 취재를 하며 책을 만들었습니다. 외양은 그대로지만 단 30년 만에, 가족처럼 함께 살면서 같이 일하던 가축에서 잡아먹기 위해 키우는 먹을거리로 그 위상이 전혀 달라진 소를 이번 호에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봄과 함께 변산 모항에 사는 박형진 시인의 식담이 새로 시작됩니다. 도시에 사는 독자들에게는 갯가로 산으로 나가 생명이 펄펄 살아있는 상차림을 하는 시인의 식담이 더욱 신선하게 느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