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호 2010년 겨울

  • 배추, '그대 무사한가'
  • “40억 년 전 지구상에 등장했다는 최초의 생명체가 끝끝내 죽지 않고 이어져 온 결과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입니다. 그것은 기적 같은 일이지요. 가녀린 풀씨가 살겠다고 아스팔트를 뚫고 나와 햇살을 만나고, 나무뿌리가 바위를 만나면 어떻게든 휘돌아 나가서 살 길을 찾아요. 그것이 생명의 본성이에요.”
    몇 해 전 모심과 살림연구소에서 마련한 강좌에서 그 때 이미 여든이 넘은 ‘동학하는 사람’ 표영삼 선생이 한 말입니다. 때로는 삶이 권태롭고 어떤 이유인지 자신이 초라하고 못나게 여겨지기도 하는 사람에게 이 말은 신선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지금. 여기. 살아있다는 이 기적. 수십 억 년 이어져 내 몸 안에 도달한 그 필연과 숙명. 그것은 굳이 나와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는 일이로구나. 당장에 우리를 지치게 하는 절망과 고통이 경솔한 조바심 때문에 과장된 것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몇 년 전에 들은 그 말을 떠올린 것은 《살림이야기》에서 배추이야기를 해보겠다며 읽은 1950년 10월 30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때문입니다. 전쟁 통에도 사람들은 김장 걱정에 조바심을 칩니다. 짧은 기사에서도 생생하게 전해오는 그 광경 때문에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삶은 이어지고 어떻게든 지금보다는 나은 세계로 우리 아이들을 보내기 위해 발버둥을 쳐왔구나’ 생각하며 잠시 숙연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초가을에 벌어졌던 배추파동은 어쩐지 억지스럽고 과장된 면이 있습니다. 뒤이어 정부가 관세를 낮춰 중국에서 마구잡이로 수입한 일을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을 보면서 근심은 더 깊어졌습니다. 이런 일은 배추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과일과 잡곡, 쌀과 채소 모두가 일 년 내내 계속된 겪어본 적 없는 기괴한 날씨 때문에 많게는 70%까지 수확이 줄었다고 합니다. 당장에 배추는 사다 댈 수 있었지만, 또 극단적인 상황에서 배추 정도는 참고 한 해쯤 날 수도 있겠지만 이 겪어본 적 없는 기후재앙이 내년이나 후년에도 우리 삶을 평온하게 이어지도록 용납할 것인지.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일상이 허용될 것인지 떠올리면 두려움마저 느껴집니다. 배추를 통해 마음껏 쓰고 버리는 우리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면 그나마 그 두려움이 가실 수도 있겠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