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호 2010년 가을

  • 집. 사다, 살다, 짓다
  • 벌레들도 짐승도 제 나름의 집을 짓고 살지만, 사람들처럼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큰 집을, 어디에 쓸 것인지도 따지지 않고 여러 채를 지니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집이나 땅값이 전혀 올라가지 않고 오히려 떨어지기만 한다면, 아예 집과 땅을 이용은 하되 소유는 할 수 없게 한다면 우리들 삶은 많이 달라지겠지요. 부동산 투기나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생각에 욕심 따위는 부리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이번 호 특집을 ‘집’에 대한 이야기로 정하고 마감 작업을 하던 중에 책의 발행인이기도 한 박재일 한살림 명예회장이 돌아가셨습니다. 그 분의 표정과 몸짓 모두가 생생한데 막상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분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러나 ‘도시와 농촌, 사람과 자연이 조화로운 생명세상’을 일구려던 그이의 열정이나 그의 스승이던 장일순 선생이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음을’이라고 한 말을 떠올리면, 비록 세상에 육신으로 부재할지 몰라도 그이가 움직여 놓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 그가 문을 열어 이미 이십오만 세대가 깃들어 있는 밥상공동체 한살림 속에 그는 고스란히 남아있고, 그의 말보다도 말과 말 사이에 머물던 침묵을 헤아려 듣던 귀 밝은 이들과 바닥을 짐작하기 어려웠던 깊은 눈빛을 기억하는 눈 맑은 이들 속에 그는 여전한 모습으로 존재할 것입니다.
    작년 여름, <살림이야기>와 했던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는 원주에서 이십 년 가까이 살다 1986년에 서울에 올라와 잠실 성내역 주변에 있는 아파트에 이사한 뒤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집과 집 사이 벽이 그토록 얇은데도 서로가 남처럼 모르는 채 ‘벽을 쌓고’ 살고 있는 게 신기했다는 그 말, 어찌 보면 아파트 한 동이 커다란 집이고 모두가 한 집에 살면서도 남처럼 지내는 게 놀라웠다는 그 말, 말입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잠실 장미아파트 20동 그 집에서 그는 줄곧 살다가 갔습니다. 인사청문회에 나온 고위 공직 후보자들이 한결 같이 위장전입과 부동산투기와 뇌물수수 탈세의 전력이 ‘누가누가 더 하나’ 경연대회라도 하듯 현란한 것을 떠올리면 서울에 올라온 뒤 이십오 년 동안 한 번도 이사를 다니지 않은 그분의 처신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