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5호 2009년 여름

  • 지금 여기 우리 학교
  •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하와이 사람들의 기도법 ‘호오포노포노’에서는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 말들을 주문을 외듯 온 마음으로 되풀이하기만 해도 주변에 긍정의 기운이 퍼져나가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연전에 화제가 된《물은 알고 있다》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랑’이나 ‘용서’ 같은 말들을 해주면 앞에 놓인 물의 분자 모양이 아름다운 육각형을 이루고 이 때문에 물을 마시는 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는 동화같은 이야기 말입니다. 어쩐지 이런 말들을 믿고 싶은 요즈음입니다.

    책을 만드는 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보다 더 놀라운 일은 그의 죽음을 진정으로 아파하며 고인이 다툼 없는 곳에서 영면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온 나라에 물결친 것입니다. 생전에 그를 비판하던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엄숙한 물결에 압도돼 권력도 정치권도 스스로의 말길과 행동을 저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잠시 동안 일뿐이라도 말입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마음은 공과나 시비를 따지고 남을 기어이 무찌르려는 마음과는 다른 차원에 존재할 것입니다.

    《살림이야기》이번 호가 주목한 이야기는 ‘학교’입니다. 학교에 대해 모두의 걱정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의 현실은 고단합니다. 정부가 손을 댈수록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책임이 정책 당국과 교육관료, 선생님들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 역시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숭상해온 경쟁력과 효율성의 가치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보다 경쟁만을 중시하고 배제와 특권을 조장하는 것 자체가 비교육적입니다.

    특집 1부 ‘학교를 배운다’에서는 교육정책, 학교의 역사, 학교의 환경, 학교 밥상의 현주소를 통해 학교의 현실을 살펴보았습니다.

    2부 ‘학교를 꿈꾸다’에서는 사람을 기르는 학교가 어떠해야 하는지, 국내외의 사례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살림이야기》는 대안학교가 최선의 대안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마을 만들기, 지역사회 속에 뿌리내리는 학교라는 점에서 풀무학교와 한알학교를, 먹을거리 자급과 에너지 자립에 대해서는 푸른꿈학교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이들에 대한 글을 싣게 되었습니다.
    3부 ‘학교를 넘어서다’에서는 굳이 학교의 담과 틀에 구애됨 없이 어디든 사람의 생각과 지혜가 자라게 해주는 곳은 학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관련된 글들 입니다.
    학교가 병들어 있다면 그것은 학교가 뿌리내리고 있는 사회가 건강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날로 심해지는 학력에 의한 임금 격차, 학벌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그릇된 관행이 변하지 않고는 학교가 바로서기 어렵겠다는 점을 필자들이 보내준 원고를 읽으며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자라나는 아이들과 우리 모두에게 학교일 게 분명합니다.

    여름호부터 ‘살림, 살림’이라는 모둠을 새로 만들고 그 안에 밥상 살림, 집 살림 등 살림살이에 대한 내용을 꾸준히 이어가려고 합니다. 먹고 입고 생활하는 문제를 살림의 눈으로 돌아보면서 독자들과 새로운 삶 틀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함께살이’를 모색해보자는 뜻입니다.

    변화무쌍한 현실 앞에서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이웃들을 ‘사랑합니다’. 뛰놀며 편히 잠 잘 권리마저 빼앗긴 채 전쟁포로처럼 참혹한 현실에 포박된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누구보다도 내가, 더 많이 가지고 남보다 잘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질주하며 이런 현실을 빚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이웃과 세상 만물에 기대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살림이야기》5호는 이렇게 읊조려봅니다. 간절하게 말입니다.

    편집장 김성희 모심


    학교가 병들어 있다면 그것은 학교가 뿌리내리고 있는 사회가 건강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날로 심해지는 학력에 의한 임금 격차, 학벌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그릇된 관행이 변하지 않고는 학교가 바로서기 어렵겠다는 점을 필자들이 보내준 원고를 읽으며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자라나는 아이들과 우리 모두에게 학교일 게 분명합니다.